디어유 엔터테인먼트 신승근(44) 부사장은 퇴근길에 종종 대형서점에 들른다. 그가 주로 구입하는 책들은 만화책. 스포츠 만화를 좋아하는 그는 며칠 전에도 일본 만화 ‘테니스의 왕자’ 32편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고, 박소희의 ‘궁’(宮)은 최근작인 12편까지 독파했다.
“만화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 이 나이에도 만화 사서 읽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사고 유연해지지, 상상력 계발되지, 젊은 세대와 감각 공유할 수 있지, 만화 좋은 점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서기 2006년, 만화는 더 이상 ‘코찔찔이’ 꼬마들의 불온서적이 아니다. 어릴 적 유소년 잡지의 연재만화를 보며 꿈을 키운 성인들에게 만화는 영화, 문학과 다르지 않은 엄연한 예술 장르다.
직장인 이동호(32)씨는 얼마 전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6만여원을 주고 일본만화 ‘몬스터’ 시리즈 한 질(9권)을 구입, 일독을 권한 게 화근이었다. 만화를 읽지 않는 여자친구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만화책 사는 데 돈을 쓰냐”고 힐난해 무안만 당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나 ‘몬스터’ ‘20세기 소년’ 같은 작품은 여느 문학 작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요. 여자친구가 세계문학전집을 사는 거나 제가 만화 시리즈를 사는 거나 무슨 차이가 있나요? 만화가 저열하고 유치하다는 생각은 만화를 안 읽어본 사람들의 편견입니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발간한 2005 만화사업통계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만화독서량은 12.1권으로, 초등학생(16.7권) 중학생(15.3권) 고등학생(21.9권)에 뒤지지 않는다.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편수가 2.78편인 것과 비교하면, 국민 1인당 연간 만화독서량 18.0권은 놀라운 수치다.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면 그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만화를 접하게 된다. 신승근 부사장은 미국에 유학중인 딸 솔애(16) 다예(14)양에게 매달 자신이 읽은 만화책과 ‘밍크’ ‘이슈’ 같은 만화잡지를 보내준다. 딸들은 조금만 늦어도 독촉 전화를 하고, 일본어로 된 만화책을 보내면 사전을 들고 일본어를 독학해가며 탐독할 만큼 만화 팬이다.
“집사람은 아직도 쓸데없이 왜 애들한테 만화를 보여주느냐고 잔소리를 하지만, 오랜만에 딸들과 함께 지낼 때면 다같이 모여 만화 읽는 재미가 그만이에요”
숙명여대 2학년 김윤아(21)씨 가족은 반대로 자녀들 때문에 부모님까지 만화에 푹 빠진 경우. 중학 1학년인 동생 윤지(13)양과 함께 빌려다 본 만화들을 부모님도 한두 권씩 보게 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만화를 읽는 ‘만화가족’이 됐다. 윤지양이 일본만화 ‘이누야사’ ‘나루토’ ‘나나’와 한국만화 ‘궁’ ‘신구미호’ 같은 만화책을 대여해 오면 언니와 어머니가 차례로 읽는데, 일본 순정만화 ‘꽃보다 남자’는 어머니 김정현(48ㆍ교사)씨가 더 좋아했을 정도다.
가족이 함께 만화를 읽다 보니 윤지양 집에는 ‘초한지’ ‘먼 나라 이웃나라’와 같은 학습만화도 꽤 많다. 먼저 읽은 사람이 추천만화를 권하는 식으로 돌려 보는데, 최근엔 아버지 김원기(52ㆍ사업)씨가 ‘발굴’한 ‘만화 박정희’를 가족들이 재미나게 읽었다. “‘초한지’ 같은 작품을 책으로 읽으려면 엄두가 안나잖아요. ‘그리스 신화’처럼 지명, 인명이 복잡한 책도 만화로 보면 이미지 때문에 기억이 잘 되는 장점이 있어요.” 어머니 김정현씨의 만화옹호론이다.
물론 지나친 일본 편중, 빈곤한 언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전개 등 만화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들숨처럼 만화의 정서를 들이키며 자란 세대에게 만화가 제거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 세대는 감수성과 상상력 훈련의 상당 부분을 만화에 빚지고 있어요. 여섯 살 때 한글을 깨치면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만화였으니까요.” 이동호씨는 “요즘엔 탄탄한 서사 구조와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세계관으로 어필하는 만화들이 많아졌다”며 “이젠 만화도 엄연한 문화 장르로 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함성호 / 시인ㆍ건축가
“모든 꿈은 불온하다. 왜냐하면 꿈은 우리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상징으로 연결된 난해한 문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는 꿈이 아니므로 언제나 손쉬운 상징들을 이용해 우리에게 다른 꿈을 꾸게 한다.
만화의 컷과 컷은 얼마나 일상적인가? 그러나 그 뻔한 일상의 비약을 통해서 만화는 우리의 일상을 다른 것으로 만든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는 꿈,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꿈, 그 자유로움 때문에 나는 만화를 본다.”
▦ 이재규 PD / 드라마 ‘다모’ ‘패션 70’s’
“드라마의 원작을 찾는 목적도 있지만, 만화를 만화답게 하는 비현실성이 좋아 즐겨 본다. ‘처음부터 제 정신인 것처럼 들리는 아이디어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떤 장르든 좋은 아이디어는 열린 마음, 열린 사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만들 때 개연성, 인과관계 등에 집착하다 보면 식상한 설정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만화는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 민규동 감독 /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만화는 선정적인 것이 아니어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순수하고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문학이나 영화가 이뤄내지 못한 독자적 창작세계를 구축한 만화는 소일거리를 넘어 인류문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일본 만화의 빼어난 상상력과 독특한 양식은 배울만하다. ‘몬스터’ ‘서양골동품 양과점’ 등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과 경지는 감탄을 자아낸다. 나는 만화를 불량식품 취급하던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만화 탐독을 적극 권한다.”
▦ 타블로 / 그룹 ‘에픽하이’ 멤버
“만화는 편하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지식과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좋은 그릇이다. 나는 어릴 적 만화를 통해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사회주의 같은 것을 배웠다. 아이들에게 역사나 경제 등을 가르칠 때 어렵고 딱딱한 책을 억지로 읽으라고 강요하기보다 친숙한 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실사를 촬영한 필름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웨이킹 라이프’처럼 실험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도 좋아한다.”
■ 만화평론가 이명석씨 추천 한국만화 10선
▦위대한 캐츠비(강도하)
결혼정보회사에서 C급으로 분류된 남녀의 어설픈 첫날 밤과 사랑, 그 연애를 더욱 아프게 하는 또 다른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 단행본은 인터넷 연재와 다른 편집으로 새 맛을 냈다.
▦식객(허영만)
중견 만화가들의 작품을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진정 단단하고 성숙한 만화의 힘을 보여준다.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속칭 ‘차장수’ 성찬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음식들의 맛의 비결을 알려준다.
▦마린 블루스(정철연)
성게 군, 문어 양 등 온갖 해물들로 변신한 도시 청춘들의 일과 사랑과 놀이.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수상작. 일기 만화의 매력은 솔직함이지만, 솔직함을 그려내는 방식에도 세련미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비빔툰(홍승우)
평범한 직장인 부부와 남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가족 만화의 전형. 직장, 육아, 교육, 가정경제 등 동시대의 젊은 가족들이라면 누구나 고민 할 이야기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풀어간다.
▦트라우마(곽백수)
어딘가 어눌하면서도 현대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갖가지 웃음 이야기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개구리 왕자 등 고전들을 패러디 한 에피소드들이 적지 않고,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묘미다.
▦츄리닝(이상신, 국중록)
독창적이고 세련된 필법으로 그려낸, 상식을 뒤집는 개그 에피소드들. 차갑고 진지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허술하면서도 이기적인 내면을 지닌 인물들을 잘 그린다.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를 접합한 패러디도 일품.
▦불친절한 헤교씨(박기홍, 김선희)
사채업자인 아버지의 방해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벤처 게임회사에 입사해 꿈을 펼쳐가는 여성의 이야기. 초반에는 청춘만화 성격이 강하지만, 뒤로 갈수록 남성적 기업 만화로 변해간다.
▦1001(양영순)
최근 10년간 한국 만화의 가장 굵은 줄기라 할 양영순의 최근 대표작. ‘아라비안 나이트’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판타지 테마를 끌어와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인터넷과 출판만화 모두에 어울리는 컬러 기법이 돋보인다.
▦궁(박소희)
작품성과 인기도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 만화. 조선 왕실이 현대에도 유지되고 있다는 설정 아래 발랄한 소녀의 왕궁 생활 체험기를 다룬다. 드라마로 제작돼 널리 알려졌지만, 원작의 독특한 매력도 적지 않다.
▦새만화책(새만화책 편집부)
만화 세계에서도 가장 독특한 예술성은 단편 만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잡지. ‘사람의 곳으로부터’의 김수박, ‘앙꼬의 그림 일기’의 앙꼬 등 실력파 작가주의 만화가들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 "만화책… 넌 손으로? 난 마우스로 넘겨"
20일 서울 동교동 만화전문 도매점 한양문고. 20,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러 작품을 훑어보며 만화책을 고르고 있다. 배낭을 메고 와 10여권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이들의 손에 들린 건 대부분 ‘원피스’ ‘나루토’등 일본 만화들. 한양문고 직원 김영애(27)씨는 “일본 만화 10권이 팔릴 때 한국 만화는 3권 팔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만화 포털 대원씨아이의 단행본 판매 순위에서도 30위 안에 든 한국 만화는 8편뿐이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발간한 ‘2005 만화산업 통계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나온 출판만화(단행본) 중 일본 만화는 무려 68.69%(3,131종)에 달한다. 이는 2001년(61.19%)보다 7.5%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일본 만화가 출판만화 시장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일본 만화의 절대 강세는 작품 자체의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케로로중사’같은 아동용 만화에서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린 ‘시마과장’까지 소재 폭이 넓다.
요리만화 ‘맛의 달인’의 경우 실제 요리사들에게 요리를 주문해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철저한 조사가 뒤따른다. 독재자 ‘친구’의 등장과 인류 파멸을 소재로 파시즘을 경고하는 ‘20세기소년’ 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도 적지 않아 탄탄한 성인 독자층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출판만화의 상대적 열세가 개개인의 역량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문화사 만화편집부 백소용(32)씨는 “일본 만화의 경우 작가 1명에 여러 명의 편집기자가 붙어 작품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는 반면, 한국은 편집기자 1명이 여러 명의 작가를 맡아 작가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제작지원 시스템이 일본에 비해 열악한 것이 주 요인이라는 것. 이는 대여점 중심의 유통 구조, 불법 스캔 등으로 만화를 연재하는 메이저 잡지가 10종도 채 되지 않는 등 오프라인 만화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최근 급성장한 인터넷 만화는 침체한 국내 만화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인터넷 만화시장 규모는 142억여원으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로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인터넷 만화는 단행본 시장의 새 젖줄이다. 강풀의 ‘아파트’, B급달궁의 ‘다세포소녀’처럼 영화화 하거나, 캐릭터 시장에 진출한 정철연의 ‘마린 블루스’등은 현재 가장 상품성 있는 캐릭터로 꼽힌다.
인터넷 만화의 주류는 메가쇼킹의 ‘탐구생활’, 김진태의 ‘바나나걸’ 등처럼 짧은 분량에 재치 있는 반전이 담긴 코믹 만화들이다. 따라서 현재의 트렌드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국내 작가들에게 유리해 인터넷의 일본 만화 비중은 7.9%에 그치고 있다.
내용과 형식에 제약이 없다는 것도 젊은 만화가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강풀은 인터넷의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기존 만화의 컷을 없앤 독특한 스타일을 제시했고, ‘다세포소녀’는 금기시 돼온 원조교제를 웃음의 소재로 활용한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데뷔할 수 있어 오프라인 시장 진입이 어려운 ‘마이너’작가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만화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포털 사이트의 원고료에만 의지하는 수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아파트’처럼 영화화한 작품을 빼면 원고료 외에 수익이 없어 포털이 원하는 만화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며 “장르별로 다양한 전문 만화 사이트의 등장과 유료화 정착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맘껏 개성 발휘하는 게 인터넷 만화의 강점이죠"
수채화 같은 순정만화 그림에 해괴망측한 고등학생들의 성적(性的) 에피소드, 거기에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따가운 일침까지 버무린 엽기발랄 판타지 만화 ‘다세포소녀’는 성공한 인터넷 만화의 본보기다.
네티즌의 무수한 클릭 세례를 발판 삼아 동명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극장 개봉(8월 10일)과 케이블TV 방영(8월23일 수퍼액션)을 앞두고 있고, 캐릭터 상품 출시도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원 소스 멀티 유스’라는 문화산업의 모범답안을 만들어가고 있는 ‘다세포소녀’의 작가는 ‘B급달궁’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채정택씨(34).
‘19禁 순정만화’라는 모순된 컨셉을 내세운 ‘다세포소녀’처럼 채씨의 삶도 이율배반적이다. 채씨는 낮에는 본명으로 학습지에 바르고 얌전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밤이 되면 질펀한 성적 농담이 가득한 인터넷 성인만화의 작가 B급달궁으로 돌변한다.
“학습지 만화를 그리면서 억눌린 욕구를 표출하기 위해 2003년부터 별 욕심 없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죠. ‘왜 우리에게는 그럴싸한 성인 만화는 없나’하는 평소의 불만이 반영된 자연스런 결과물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기존 만화의 문법을 허물며 인터넷 스타 작가로 떠올랐지만 채씨는 예상과 달리 전통적인 만화가 입문 과정을 거쳤다. 그는 1995년 건국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후 중견 만화가인 윤종문씨의 화실에 놀러 갔다가 얼떨결에 문하생이 됐고, 5년간의 수련을 거쳐 2000년 아동만화 ‘GA특공대’라는 단행본을 내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출판만화와 인터넷만화를 모두 경험한 드문 작가인 그는 인터넷 만화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터넷 만화는 제작과정이 편리하고 데뷔가 수월합니다. 출판만화는 스토리, 구성, 능력 등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으면 책을 낼 기회가 아예 없으니까요. 시장 트렌드를 따를 필요 없이 자신의 개성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것도 인터넷 만화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 만화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인터넷 만화가들이 문하생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쉽게 얻었지만 일정 기간 담금질을 하지 않고 독자와 만나니 부작용도 많습니다. 인세 등 적절한 수익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에요. 지금의 구조에서는 신인작가들이 재능을 채 펼치기도 전에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채씨는 인터넷 만화가 조만간 출판만화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보는 방식만 틀릴 뿐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볼 때의 느낌이 중요하지 보는 방식이 중요하진 않잖아요. 인터넷으로 성공한 만화는 출판만화로도 히트할 가능성이 크죠. 게다가 책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주는 매력을 거부하지 못해요. 그래서 저도 여전히 인터넷과 출판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만화산업 영화·게임 등 콘텐츠로 '새 전기'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여점 창업 붐과 일본문화 개방 등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던 만화산업은 2000년대 들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04년 현재 국내 만화산업 규모는 출판판매와 대여시장, 온라인 시장을 합쳐 7,000억원으로, 2003년 7,591억원보다 7.8% 포인트 줄었다. 전체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2003년 기준)도 아직은 1.72%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화가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원천 콘텐츠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인터넷 만화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전기를 맞고 있다. ‘보물섬’ 세대의 성장과 함께 30, 40대 성인에서 유아까지 소비층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도 청신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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