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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天災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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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天災는 없다

입력
2006.07.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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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끔찍한 물난리를 겪었던 까닭인지 비가 그치질 않은 며칠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수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집이 무너지고 다리가 떠내려가고 길이 끊겼으며 사람들은 흙더미에 파묻히고 물에 휩쓸렸다.

'전쟁을 치른 듯'이라는 표현이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다. 엄청난 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들은 자연 앞에 초라해지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모두들 천재지변이라고 한다.

● 천재지변은 야만스런 문명 탓

하지만 아니다. 처음부터 천재는 없었다. 자연은 늘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자연은 늘 그렇듯 번개를 내리고 비를 뿌리고 그 물이 넘쳐흘렀을 뿐이다. 하늘의 재앙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이다.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물길을 돌려 세워 둑을 쌓고 산허리를 잘라내 길을 만들고 나무를 베어내 밭을 만들고 물이 넘쳐야 할 곳에 흙을 메워 집을 지었던 것은 사람들이다.

인간은 자연을 밀쳐내고 도시를 세웠고 도시는 승리에 도취된 기념비로 가득하다. 인간의 문명이 자연과 벌이는 한판 전쟁이었음은 틀림없지만 때로 무모한 싸움일 때가 더 많다. 가끔 자연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그 사실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자연의 자리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선 인간들이 새삼스레 천재지변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천재지변으로 고통을 떠안는 것은 늘 없는 사람들의 몫이다. 자연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들이닥친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높고 튼튼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천재가 빈번한 까닭은 자연조차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에너지를 펑펑 쓰면서 온난화 문제에 인색한 나라들은 잦은 자연재해가 빈곤한 나라에 들이닥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산을 헐어 골프장을 만들고, 산허리에 별장과 펜션을 짓고, 강을 돌려 세워 다리를 놓고, 멀쩡한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파헤쳐 단지와 상가를 만들어 이득을 본 사람들은 산사태가 날 집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발과 발전의 이익을 도시의 기념비에 쏟아부을 때, 그저 자연이 허락하는 작은 공간에 기대 사는 사람들만이 고스라니 자연을 감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고통은 자연을 헐어 얻은 부의 행복 건너편에 있다.

● 늘 없는 사람들만 고통

어차피 자연과 한판 경쟁을 벌이자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그 싸움이 전면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감내해야 할 몫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다. 자연이 제 갈 길을 가겠다고 들이닥칠 때마다 천재지변으로 말한다면 그보다 무책임한 것이 없다.

쓸려 내려간 길 앞에서 시공업자와 공무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피치못할 천재지변이었음을 먼저 말한다. 그들만의 탓이겠는가? 언론은 앞다투어 천재지변을 내세우며 인간의 온정을 호소한다. 자연에 책임을 물으며 이웃의 정을 나누는 것으로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

천재지변은 자연의 탓이 아니라 천재지변을 말하는 인간의 탓이다.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파헤친 자연의 피해를 늘 없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야만의 문명일 뿐이다. 엊그제 내린 폭우는 그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진송 목수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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