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포항지역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농성은 사실상 백기투항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는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민ㆍ형사 소송과 시위중 다친 노조원의 사활문제 등은 점거농성보다 더 큰 폭발력을 안은 채 잠복해 있다.
노조는 성과는커녕 수십명의 구속자와 거액의 손배소송, 중태에 빠진 노조원의 생사문제 등이 걸려 있어 그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사항전을 외친 노조원들이 일단 자진 해산한 것은 오랜 농성으로 지친 데다 등을 돌린 여론, 청와대까지 압박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음식물 반입 금지와 허용, 소극적인 진압작전의 반복, 단전과 단수 등 경찰의 ‘진빼기’ 작전은 고령의 노조원들에게 강경진압 보다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또 포항지역 시민들이 1만5,000명이나 모여 점거농성 반대시위에 나서고 청와대가 20일 초강경 입장을 밝히자 전의를 상실, 심적 동요가 심해지면서 지도부의 통제력 상실과 ‘엑소더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용자측은 해산직후 협상테이블에 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가 요구한 ▦임금 15% 인상 ▦토요유급휴무제 시행 ▦하루 8시간 근무 엄수 ▦목공분회인정 등 핵심쟁점 대부분은 사용자인 전문건설업체들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난항이 불가피하다.
노조요구를 다 수용하면 추가부담이 50%가 넘는다는 사용자측은 발주사인 포스코의 배려가 없다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8시간 근무에 시간외근무수당 등을 제대로 받는 기술자그룹인 기계ㆍ전기분회와 달리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목공 철근 등 분야는 사용자로부터 노조 실체조차 인정 받지 못해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16일 포항 형산로터리 민노총 가두시위 과정에서 다친 건설노조원 하중근(45)씨의 회복여부도 변수다.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하씨에게 불상사가 생긴다면 민노총은 이를 기화로 힘을 재집결해 포항은 또다시 분규의 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본관건물 청소ㆍ수리비와 업무차질비용 등에 대한 포스코의 민형사 소송이 이어지면 생계형인 포항지역건설노조 입장에서는 이판사판 심정으로 또다시 투쟁의 대열에 나설 수도 있다.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21명중 17명과 이날 오전 4시까지 해산하지 않던 120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 이 중 지도부와 극력가담자 등 30∼50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포항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노조는 터무니 없는 요구 대신 수용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사용자와 포스코도 노조원들의 처지를 감안해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노조원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포항시민인 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이정훈기자 hlee01@hk.co.kr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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