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관. 9일째 점거 농성하던 포항지역 건설 노조원들이 자진 해산을 선언, 건물을 빠져 나오자 시민들의 환호성이 철강 도시에 울렸다. 휴대전화로 '강제 진압 초읽기, 농성 그만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노조원 가족들이나 농성의 장기화에 분노하던 시민들 모두 "큰 불상사 없이 끝나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표시했다.
포스코 점거 농성 일지를 돌아보면 노조의 농성을 중단하게 한 힘은 바로 시민들이었다. 사태 초기만 해도 시민들은 "노조원들도 뭔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농성이 길어지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도대체 포항을 망하게 하려고 하느냐"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분노는 시위 반대 집회 참여로 이어졌다. 포항지역 시민ㆍ사회단체가 노조의 '노동탄압 규탄대회'에 맞서 개최한 두 차례의 '포항경제살리기 범시민 궐기대회'에는 각각 1만 여명이 참석했다. 포항에서 열린 시민 집회로는 최대 규모였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 강경 대응 방침에 명분을 보탰고, 노조원들을 농성현장에서 이탈하도록 한 가장 큰 압력이 됐다.
시민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있다. "장마와 파업이 겹치면서 손실이 컸다"는 죽도시장의 한 상점 주인은 "아픔을 겪은 만큼 포항 발전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시 승격 50주년을 맞는 포항은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 포항'을 기치를 올리고 있다. "노조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시민들로부터 배웠을 것"이라는 회사원 정헌종(38)씨의 토로는 노사가 다시 한번 화합해 포항 경제 도약의 주역이 됐으면 하는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전준호 사회부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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