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관에 ‘딱정벌레’엄마들이 모이면 ‘놀고먹을’ 얘기만 한다. “반찬은 한 가지씩 싸오고, 계란을 삶아갈까?”“감자를 쪄 가지.”“자기는 고기 좀 재와.”도대체 뭐야, 어딜 간다는 거야? 그 모임의 얘기를 엿듣다 보면 함께 떠나고 싶다.
‘딱정벌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들의 모임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얘기 주제가 ‘학습’으로 바뀐다. 재량학습, 체험학습, 가정학습, 야외학습, 현장학습, 방과후 학습…. 특히 한 달에 한번 토요휴업일이 생기면서 현장체험학습 보고서를 내게 되었다. 엄마 혼자 그 토요일마다 아이와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유적지나 박물관에서 아이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후다닥 이동시키는 안내자가 불만스럽지만 엄마가 뭐라 보충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경험, 그래서 ‘딱정벌레’ 엄마들은 아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을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 어디를 찾아 갈 것인지 같이 정하고, 책을 찾아 엄마들이 먼저 공부하고, 현장을 미리 답사한 후,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처음엔 엄마와 아이들만의 일이었지요. 그러다 문득 아빠들도 함께 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빠들, 첫 반응은 역시나 “너희끼리 가라”였단다. 피노키오 코만큼 입이 튀어나온 아빠들을 억지로 끌고(?) 1박2일 답사 길에 나섰다. 마지못해 끌려온 아빠들, 그러나 술 한 잔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단다. 이제는 퇴근길에 전화해 만나고, 뜬금없이 ‘형님’하며 집으로 찾아오고, 답사계획도 주도하고, 아이들과 답사과제를 완수해 차트를 만들고, 밤마다 만나 마라톤 연습도 하고 그러더니…, 자칭 ‘떡정벌레’들이 됐다.
요즘 세상에 이웃이 있을까? 엄마들은 좀 낫다. 학교에서, 동네에서 또래의 아이들을 놓고 얘깃거리를 찾으면서 이웃이 된다. 그러나 아침에 나서 밤늦게 집을 찾는 아빠들에게 집이 있는 동네의 이웃이란 그저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딱정벌레’ 엄마들은 아빠들에게 이웃을 주었다. 아내와 남편을 이웃에게 공개하게 됐다. 아이들과 아빠를 함께 하게 했다. 아빠들이 ‘떡정벌레’라며 팀웍을 자랑하자 아이들은 ‘주니어 딱정’을 구호로 외친다.
아빠는 뽀빠이다. 아빠가 등장하면 엄마도 아이도 괜스레 힘이 솟는다.
어린이도서관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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