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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 그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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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 그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

입력
2006.07.2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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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학 성채의 주추 가운데,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튼실한 동양의 업적이 있다면 단연 ‘아라비안나이트’가 꼽힌다. 이 1,001일 밤의 이야기가 군더더기를 추린 5권의 책으로 새뜻하게 묶여 나왔다. 소설가 김하경씨가 영문판 정본으로 꼽히는 19세기의 리처드 버턴판(版)을 가운데 두고 우리 글로 옮겨 엮은 ‘아라비안나이트’(시대의 창, 전권 4만9,000원)다.

대개의 고전이 그렇듯, 아라비안나이트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천일야화’(千一夜話) 169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와 그 각각의 이야기 액자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그 대략의 줄거리만이라도, 아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뱃사람 신드바드의 모험담이나 ‘열려라, 참깨’의 알리바바 이야기, 거인 ‘지니’의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만으로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정교하고, 아라비아 옛 도시의 골목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미궁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미궁은 이렇게 열린다. “아주 먼 옛날, 인도와 중국의 여러 섬을 다스리는 사산 왕조의 한 대왕이 있었다. 왕중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는 단 두 왕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형 샤리아르가 부왕의 뒤를 이었으며, 동생 샤자만은 멀리 사마르칸드의 왕으로 봉해져 형 곁을 떠났다.”

이들 형제 왕의 20년 만의 재회와 그 과정에 알게 된 왕비들의 불륜, 여자의 정조를 불신하게 된 샤리아르의 3년간의 처녀 살해, 그리고 왕국에 남은 마지막 두 여자인, 대신의 딸 샤라자드(세헤라자데) 남매와의 운명적 만남…. 날이 새면 살해될 샤라자드는 그 생애 마지막 밤, 마지막 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한 부유한 상인이…” 날이 밝아오도록 샤라자드의 입담에 혼을 놓았던 왕은 ‘이야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이 사랑스런 여인을 죽이지 않으리라’ 알라에게 맹세한다. 하지만 샤라자드의 이야기는 금세 끝나는가 싶다가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무(圓舞)의 뱀처럼, 이어지고 이어진다. 하루이틀 밤에 단락이 지어지는가 싶으면, 무려 102일 밤을 이어가는 장편 이야기(‘우마르 빈 알 누우만 왕과 두 아들’(45~146일째 밤)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샤라자드의 3~9일째 밤 이야기(‘어부에게 은혜를 갚은 마신’중 현자 두밤과 유난왕 이야기에서 책장 끝에 묻힌 독약으로 왕을 살해하는 장면)를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차용했고,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서사 형식을 답습한다. 또 보르헤스도 단편 ‘동상들의 왕실’과 ’꿈을 꾸었던 두 사람 이야기’에서 샤라자드의 272~285일째 밤(‘아브라함과 이발사 외 네 가지 이야기’) 이야기 등에 실린 액자 속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 썼다.

그렇게 1,001일의 밤을 지내는 동안 왕의 세 아들을 낳은 샤라자드는 왕에게 단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아이들이 어미 없는 고아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버턴판을 원전으로 삼은 이 책에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는 수록돼 있지 않다. 이 책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멀리는 6세기부터 가까이는 17세기까지 구전되거나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광활한 이슬람 지역의 이야기들을 아우르며 집성된 것인 만큼, 사실 원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판본에 따라 신드바드의 이야기나 알라딘 이야기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어쩌면, 아라비안나이트는 수많은 시대의 샤라자드들에 의해 지금도 새롭게 쓰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방 세계에 처음 소개되던 18세기에 이 책은 음란하다는 누명을 써야 했다. 그래서 초기 영역본은 원본의 내용 상당부분을 누락(훼손)시키기도 했다.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지금 읽어도 사뭇 도발적인 수많은 성애담이 담겨 있다. 그리고 모험과 사랑, 음모와 배신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들을 품었다가 내뱉으며 끊일 듯 이어져가는 입체적인 구성 등은 현대 소설문학이 이 비옥한 동방의 토양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자양분을 흡수했는지 짐작케 한다.

기왕에 나온 번역본이 적지 않고 10권짜리 완역본도 있지만, 이번 번역본이 매력적인 것은 어색한 직역도 의고체 문체도 아니어서 편히 읽힌다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누구든, 첫 권의 50쪽 정도만 읽으면 중간에 손을 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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