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靖國)신사에 A급 전범을 합사한 것이 불쾌해 스스로 참배를 중단했다는 히로히토(裕仁ㆍ1901~1989) 일왕의 육성 메모 공개를 계기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8ㆍ15 참배’ 강행 여부가 다시 초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 내에는 2001년 집권한 이후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고이즈미 총리가 집권 마지막 해인 올해에도 참배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올해에는 당초 공약이었던 ‘8ㆍ15 참배’를 관철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알려져 국내외에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히로히토 메모’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입지를 크게 제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왕도 A급 전범 때문에 참배를 중단했는데 총리가 계속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물론 야당으로부터도 참배 중지를 요구하는 논평이 빗발치고 있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메모가 참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환성도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반발하고 있다. 그는 20일 기자회견에서 “(메모가 참배에 주는) 영향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폐하도 여러 가지 생각이 계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분이 말했다고 해서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메모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비판하며 “총리가 흔들리지 말고 참배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8ㆍ15 참배가 초점이 되는 이유는 아시아 외교와 일본 국내 정국에 미치는 폭발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특히 두 달 뒤로 다가온 자민당 총재 선거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핵폭탄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천황의 나라’였던 일본에서 갑자기 돌출한 ‘천황의 마음’이 국민에게 미치는 파장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지적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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