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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식인들에 대한 반감

입력
2006.07.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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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출범 전 전두환씨가 국보위원장으로 있던 때니까, 그가 12·12 군사쿠데타와 광주항쟁 무력진압 등을 거치면서 집권행보를 구체화해 가던 시절이다. 당시 신군부 인사들에게 숱한 학자, 교수들의 자천타천 인사청탁이 줄을 이었고, 심지어 주의의 눈을 피해 밤이면 연희동 전씨 집을 찾아드는 이들도 많았다.

개중에는 뜻밖에 양심적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일은 내심 '배운 사람'들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을 갖고 있던 전씨 등 군 출신 인사들이 콤플렉스를 털어버리고 도리어 지식인집단을 우습게 여기는 계기가 됐다.

오래 전 5공 인사의 전언이어서 어느 정도 사실인지 확인할 도리는 없으나 이후 선거 때마다 줄 좀 대보겠다고 몰려 다니는 지식인들의 볼썽사나운 행태로 볼진대 크게 과장된 얘기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 이념적 편향과 지성의 결핍

진부하고도 번번이 추상적 논의에 그칠 수밖에 없는 지식인론을 새삼 꺼내는 이유는 요즘 우리 사회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부쩍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대 정운찬 전 총장은 퇴임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존경 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한 지식인들의 통렬한 자기성찰과 자각을 호소했다. 앞서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올해 초 펴낸 책 '우리 시대 지식인을 말한다'를 통해 한국을 아예 '죽은 지식인의 사회'로 단정지었다.

이념적 편향과 지성의 결핍

지식인들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이처럼 크게 떨어지게 된 데는 여러 시대적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교육의 확산과 정보의 무제한 유통으로 인해 대중이 특정집단의 독점적 지식을 인정하지 않게 된 탓이 크다.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굳이 지식인들의 판단과 견해에 의지할 필요가 적어진 것이다.

철학적으로도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입장은 사회가치를 창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전통적 지식인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헤겔, 마르크스 등이 만든 것과 같은 큰 틀의 담론이 도리어 다양한 소수견해의 억압기제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그저 대중을 좇거나 그 속의 무력한 일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나아가 피터 드러커 같은 이는 지식의 정의 자체를 바꿔 버렸다. 지식이란 정보를 특정 업무에 응용하는 능력이므로 실용성을 지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이 진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의 말처럼 우리 지식인들이 존중 받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사회적 반감을 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시대상황보다 지식인들 스스로의 문제가 더 크다.

이 대목에서 정 전 총장이나 전상인 교수는 지식의 도구화와 상품화, 이념적 편향성과 지성의 결핍 등을 공통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제 개인적인 이득을 노리고 여기저기 헛된 이름을 파는 데나 여념이 없다는 얘기다.

책임의식과 자긍심 회복해야

그러고 보면 이 정권 들어 유난한 이념적 쏠림 현상도 어떻게든 시류를 타고 권력과 대중의 주목을 끌어 한 자리쯤 얻어 걸치려는 얄팍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비친다.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서 깊은 공부와 성찰이 깔린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는 대신, 경박하고 자극적인 표현과 선동적이고 천박한 공격성이 날로 두드러지는 것도 이런 저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전의 앞뒤 면만 바뀌었을 뿐 앞의 전두환씨 집 주변을 얼쩡거리던 지식인들의 처신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행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 일반이 기대를 접는다 해도 지식인 스스로는 사회적 보편가치의 수호자로서, 또 올바른 방향 제시자로서의 책임의식과 자부심을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독립적 사고와 자유로운 정신의 회복으로 현재의 반감을 다시 관심과 애정으로 돌리는 것 또한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 책임의식과 자긍심 회복해야

'지성인은 자신의 내부를 끊임없이 동요시키는 현세적 유혹과, 자신의 선언을 줄기차게 회의시키는 타인의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일찍이 30여년 전 회자됐던 김병익의 경구 '지성과 반지성'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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