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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보듬는 따스한 仁術 수재민 "희망·용기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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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보듬는 따스한 仁術 수재민 "희망·용기 얻었죠"

입력
2006.07.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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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가 났는데도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더니만 이렇게 고마울 데가…”

강원 수해지역 주민 돕기에 나선 삼성서울병원 의료봉사단은 21일 방문진료 등 ‘찾아가는’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 의료진 24명이 머물고 있는 강원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는 복구작업이 활기를 띠면서 이날 대부분 도로의 통행이 재개됐다. 그러나 수해복구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 대부분은 따로 짬을 내 진료소를 찾을 여유가 없는 상태다.

속사리에서 10㎞ 정도 자동차를 몰아 백옥포 1리의 허름한 가옥을 찾았다. 방에는 10년 전부터 중풍을 앓아 온 김옥정(69)씨가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며 누워 있다. 아들 곁을 지키던 노모 이정옥(87)씨는 송형곤(성균관대 응급의학과) 교수 등이 들어서자 두 손을 꼭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평소 1,2일 마다 들르던 보건소 직원의 발길이 끊긴 게 벌써 일주일째다. 이웃들도 저마다 무너진 집을 복구하느라 신경 쓸 틈이 없다고 했다. 노모 혼자서는 간병과 청소가 버거웠던지 방안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나마 집이 수마의 피해에서 빗겨간 게 다행이었다.

“찾아올 친척이 있나, 전화가 끊겨 어디에 연락할 수가 있나.” 노모는 가슴을 치며 그 동안 아들 앞에서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일보와 삼성서울병원이 함께 펼치고 있는 수해지역 의료봉사활동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다. 의료진은 1,000명 가까운 주민이 살고 있는 용평면 일대를 찾아 다니며 수재민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있다.

이날 오전 9시27분께는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와주세요.” 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구급차가 달려간 곳에는 김정순(60ㆍ여)씨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집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를 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하던 아들 이상배(34)씨는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더미와 토사를 치우는 문제로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갑자기 쇼크를 받아 쓰러졌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갑작스런 모습에 놀란 손녀 이국희(7)양은 “할머니 죽으면 어떡하냐”며 눈물을 펑펑 흘리고 서 있었다.

의료진은 현장에서 상태를 확인한 후 김 씨를 자동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진료소로 싣고 와 치료해 주었다. 진료 결과 급성 스트레스 증후군이었다. 송 교수는 “예상치 못한 참상에 주민들의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 있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약을 지어주었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눈물을 닦았다.

서울에서 온 최고의 의료진이 방문진료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네마다 노인정, 마을회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온몸이 쑤시거나 속이 답답하다며 아픔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물이 빠지기 전에 집 안에 남아있는 가재도구를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안간힘을 쓰다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평소 복용하던 약을 잃어버린 것도 큰 걱정이다. 김순자(73ㆍ여)씨는 “아들이 매달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심장과 관절에 좋다는 약을 지어왔는데 다 떠내려갔다”며 안타까워 했다.

의료진은 이날 하루 종일 80명이 넘는 주민을 진료했다. 수해의 악몽은 남아있지만 의료진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희망을 얻은 듯 주민들의 표정에는 조금씩 그늘이 걷혀가고 있었다.

평창=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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