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1,300매짜리 장편소설을, 개성으로 푸석푸석한 그 허다한 언어들을, 굵은 하나로 모아 꿸 ‘이야기’ 없이 지탱해내기란 만만찮은 일이다. 대개의 장편소설에서 중심 서사는 소설의 문장들을 이어가는 동력이고, 낱낱이 흩어지려는 작은 이야기들을 다독여 아주 흩어져버리지는 않게 휘어 쥐는 말뚝이다.
젊은 작가 손홍규씨의 첫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에는 그 ‘말뚝’이 없다. 주인공이 없고, 처음과 끝을 선명하게 관통하는 서사가 없다. 그 대신 작지만 푸진 이야기가 있고, 왜소하지만 오지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나로 모이지 않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그러면서도 산만하다거나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야기’의 세상이다.
소설은 남자가 노령산맥 어름 마을의 한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가 한 소년을 만나는(혹은 낚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도 물고기도 아니고, 산 자도 귀신도 아닌 모호한 존재. 1,300매의 대부분은 그 소년이 풀어놓는 허다한 사람들의 사연과 그 사연들이 얽히고 설키며 짜가는, 포슬포슬한 삼베포 같고 포시러운 목면 같은 사설로 이어진다.
원단으로 펼쳐지는 남도 사투리와 “는질는질” ”싸목싸목” 쉼 없이 튀어나오는 토종 어휘들, 그것들이 그려가는 하나하나의 삶의 무늬들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한 마디로 그 캐릭터를 규정하기 힘든, 수많은 인물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아득한 우리 기억 속의 이들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신면댁 (그는 이곳 토박이로 한 동네 배씨와 처녀 시절부터 눈과 배가 맞아… 그들 부부가 짓뭉갠 보리밭과 유채밭 그리고 목화밭을 더하면 두마지기는 족히 될 것이라는 셈평이 나돌았는데….”(152쪽)
그들은, 우리 농촌의 삶이 그러하듯, 대체로 고단하지만, 그 삶의 비애들은 구수하고 건강한 웃음의 커튼 뒤로 언뜻언뜻 내비친다. 가령, 갑오년에 낫을 들고 한 역할을 했다는, 머슴이었던 고조할아버지의 낫질 솜씨는 이런 전설로 마을에 전승되고 있다. “그가 팔을 쭉 뻗어 낫질을 한번 하면 여자 둘셋을 자빠뜨려도 좋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고 한다.”(93쪽)
소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가 노령의 그늘에 살다 이미 그 그늘로 스몄거나, 하릴없이 스며들 상처 입은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화자인 소년 ‘나’는 육손이로 태어났다가 그 잉여의 흉터를 지니고 있는 존재다. ‘나’의 흉터는 소설에서 그 허다한 사연들의 슬픔, 아픔, 욕망, 분노의 순간마다 그 통증을 가장 먼저 느끼고 반응하는 시대의 촉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잇는 하나의 굵은 맥을 굳이 찾자면, 흉터가 증언하는 한 시대 상처의 기록쯤 될까. 하지만 그 의미야 천천히 따져도 될 일. 일단 이 소설은 재미로 뿌듯하고 문학의 격조로도 번듯하다. 그래서 반갑다. 지겹도록 지짐거리는 이 찌무룩한 하늘의 한 줄기 햇살처럼.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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