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고시원 화재참사는 선진국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의 그럴 듯한 외양이 사실은 곳곳의 후진적 치부를 가린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외화(外華)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내빈(內貧)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번 참사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원시적이다. 폭발사고도 아닌 다음에야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 도심의 겨우 4층짜리 건물에서, 그것도 대낮에 발생한 단 30분 화재로 8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대형참사가 빚어졌다는 것은 도무지 어디 내놓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다.
큰 사고 때마다 그랬듯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변형적 공동 숙박시설인 고시원의 난립을 방치한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원래 공부방이었던 고시원이 IMF사태 이후 저소득층의 임시 기식처로 변질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서울에만 3,000여 곳이나 된다. 현실은 명백한데도 다만 법적으로 독서실 같은 다중이용시설도, 그렇다고 다중주택도 아니라는 애매한 성격을 핑계 삼아 관리감독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었던 셈이다.
잠겨진 비상구, 대피나 연기 배출이 불가능한 좁은 복도와 창문, 미작동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등 대책 없는 방재무감각은 수십 년 간 지겹도록 되풀이 보아온 모습이다. 당장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안전불감증이 그토록 잦은 참사를 불러왔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이 역시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일반의 자발적 각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적극적이고도 엄정하게 행정·사법적으로 규율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은 크다. 규율은커녕 업주들의 반발에 밀려 지극히 마땅한 개정소방법 시행조차 미뤄온 무소신, 무책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을 겪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답답하다. 갈 곳이 없어 그런 시설에서 살다가 죄 없이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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