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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한나라당 늪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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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한나라당 늪에 빠지나

입력
2006.07.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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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지난 11일 전당대회를 열고 강재섭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꽃다발을 높이 들고 인사하는 강 대표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흥망성쇠(興亡盛衰)란 단어였다. 흥 속에 망이 깃들고, 망 속에 성이 싹트며, 성 속에 쇠가 보이는 그런 느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강 대표나 한나라당에 악담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과거의 민정계와 영남 출신 보수인사들이 장악한 새 지도부가 한나라당을 흥하게 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들에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는 진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열린우리당을 상대하는 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당과 나라를 앞으로 끌고 갈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불안감

한나라당은 5ㆍ31 지방선거에서 54%라는 높은 득표율로 압승했고, 각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쟁쟁하여 여론조사마다 당내 후보들이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야말로 한나라당의 전성시대다.

그러나 그 전성시대는 어쩐지 불안했고,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그 불안감의 실체가 드러났다. 과거로 돌아갈 능력은 있으나 미래로 나아갈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한나라당 위기의 본질이다. 그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의 전성시대는 내년 대선에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다음 여당이 지금 여당처럼 죽을 쑤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은 야당으로서도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재오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까. '민주화 투쟁 경력'이란 이제 기대도 약발도 잃은지 오래지만 이 의원의 경우는 보수정당에 십여년간 몸담아 왔다는 점에서 균형감각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대표가 되었다면 한나라당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성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전당대회 이후 그의 처신을 보며 크게 흔들렸다. 그는 이재오의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반발했다. 가출하듯 당에서 뛰쳐나간 그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로 내려가 칩거했는데, 불당에서 참선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의 눈에 매우 황당하게 비쳤다. "내가 원내대표를 할 때 박근혜 대표를 그렇게 잘 모셨는데 배신당했다"는 비난은 민망할 지경이다. 당 대표를 잘 모신 게 생색 낼 일인가.

강 의원 측에서 색깔론으로 자신을 공격했고, 절대중립을 선언했던 박근혜 전 대표가 강 의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분한 마음이 솟구쳤더라도 좀더 의연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최고위원회의에 출석하여 '도로 민정당'의 위험을 경계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이 의원의 태도를 보면서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당이 깨질 수도 있구나 느꼈다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강재섭 의원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그가 민정당 시절 TK(대구ㆍ경북)의 차세대 주자로 키워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 시절의 생각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강 대표는 자신의 과거만을 기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변화와 당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한나라당을 키웠다. '감정적인 진보'의 실패가 '감정적인 보수'의 입지를 넓혀주었다. 여야의 대결은 철학이나 업적의 대결이 아니라 서로를 혐오하는 감정의 대결이었다. 최근 들어 '새 인물'에 대한 논의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이비 진보와 사이비 보수의 싸움에 신물이 나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환골탈태해야 할 사이비 보수

지금 한나라당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구태의연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보수로 늪에 빠질 것인가, 환골탈태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 미래에 도전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 없는 시대에 한나라당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역사에 기여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당내 후보 경쟁에서 이긴다고 대권이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장명수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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