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신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부처뿐 아니라, 현안이 산재한 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사회부처 안건에 적극 개입, 조정하겠다는 뜻을 밝혀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부총리’로서의 위상을 살려 사회ㆍ경제부처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재경부의 적극적 정책조정기능이 되살아 날지, 한계만 실감하고 흐지부지 될지 주목된다.
권 부총리는 18일 취임사와 기자간담회에서 예상과 달리 재경부의 소관사항이 아닌 부분에 대해 대부분의 발언을 할애했다. “노사관계 입법과 비정규직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연금과 건강보험 부분에 과도하게 쏠려있는데, 보육 장애인 노인 등 전통적인 복지부분을 개선하는데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발언이 그것이다. 부처간 현안 조정을 위해 직급을 막론하고 관계부처 담당자를 직접 만나 설득하겠다고도 했다. 전통적인 재경부의 업무인 경기전망, 세제 등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말로 요약됐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권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재 재경부가 처한 현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경기운용, 금융, 세제 등 재경부의 전공분야에서 새롭게 정책을 변경할 큰 이슈가 없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권 부총리가 제1과제로 꼽은 ‘일자리 창출’과 같은 현안이 더 이상 경제부처만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뼈저린 현실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권 부총리는 “과거에는 경제 성장에 따라 자연히 고용이 늘고 분배가 개선되는 경로를 따라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경로가 작동을 잘 하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비교적 높은 수치의 경제성장률(5%) 달성, 주요 대기업의 이익 극대화 등 지표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서민이나 영세자영업자 등은 이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재경부가 아무리 경제지표를 좋게 달성해도 국민의 체감경기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좌절감이 권 부총리로 하여금 경제지표보다 복지, 노동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나서게 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권 부총리의 진단이 옳다고 해도, 실제 그의 의욕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우선 재경부가 각 부처의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방법’이 별로 없다. 과거 기획예산처가 분리되기 전 예산편성권까지 가지고 있을 때에는 예산배분과 연계해 각 부처들의 현안을 조정하는 권한이 막강했으나, 지금은 “부처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지경이다. 재경부 정책조정국 관계자는 “재경부가 관련 부처들의 입장을 질타하고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며 “국무총리실과 조정업무가 겹치는 문제도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재경부가 무조건 경제효율의 시각을 앞세워 사회부처 현안을 재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재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설수록‘시장경제 맹신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