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예주간지 버라이어티의 피터 바트 편집장이 저술한 ‘할리우드의 영화전략’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황폐한 이면을 다루고 있다. 책에는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메이저 영화사들이 블록버스터 제작에 안간힘을 쓰다가 다시 제작비 상승을 초래해 수익구조를 악화시키는 과정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바트는 “여름철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흥행대전에 지쳐 정신분열 수준에 다다른다”고 말한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밟고 있는 요즘 충무로의 풍경은 바트가 그려낸 할리우드의 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
한 영화사 집계에 따르면 7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제작이 예정돼 있거나 진행중인 한국영화는 150편. 15년 동안 한해 제작 편수가 100편을 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빅뱅’ 수준이다. 편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불과 4,5년 전이면 쾌재를 불렀을 100만 관객 동원은 명함도 못내미는 상황이다. “90년대 후반 흥행에 실패하면 야반도주하려고 짐까지 싸놓았다가 67만 관객이라는 대박을 맞아 기사회생했다”는 한 영화제작자의 말은 이젠 실현 불가능한 전설이 됐다.
제작 편수가 늘고 관객이 급증하고 있다지만 역설적으로 영화인들은 힘겨워 하고 있다. 영화사 상장 붐으로 돈이 넘쳐 나면서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해졌고, 수익률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회상장 된 한 제작사의 직원은 “예전의 자유분방했던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듯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영화 홍수 속에서 제작사들이 살아 남기 위해 블록버스터 전략에 매달리는 것도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크게 터트려 크게 먹으려다 큰 손해를 볼 수 있어서다. 블록버스터가 주류로 등장하면서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도 영화인들을 우울하게 한다.
돈 냄새만 물씬 풍기고 냉혹한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횡행하는 요즘, 충무로는 어느 때보다 낭만이 가득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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