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결국 여론에 백기를 들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지난달 19일 "2008학년도부터 다른 시ㆍ도의 외국어고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발표한 지 꼭 1개월 만이다.
교육부의 백기투항은 발표 때 만큼이나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발표자는 공교롭게도 김 부총리 후임인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다. 김 내정자는 18일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 청문회에 출석해 "2008학년도부터 시행할 지 여부를 교육감 등과 논의해보겠다"는 말로 재고를 시사했다.
이어 몇 시간 뒤 교육부 공보관을 통해 "2년 유예해 2010학년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청문회 전날인 17일까지도 유예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이 김 내정자 단독 결심으로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교육부의 급선회는 반대 여론이 큰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외고 지원 제한 방침이 알려진 뒤 외고 측은 물론, 학부모단체 교원단체 등이 일제히 '졸속'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시책이 국제화ㆍ개방화라는 시대 흐름과 역행한다는 이유에서다.
'외고 출신=대학 어문계열 진학'이라는 설립 취지를 위반했다고 타 시ㆍ도 학생들의 외고 지원을 막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셌다. 지방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은 "학교 선택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며 반발하면서 연일 정부를 공격했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은 전국 29개 외고교장장학협의회(회장 유재희 경기 과천외고 교장)는 7일 대 교육부 건의문을 통해 2010학년도까지 시행을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다. 외고 교장들은 정치권 등에 2008학년도 시행이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뜻을 거듭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를 준비하던 김 내정자는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외고 지원 제한 조치 관련 보고를 받은 뒤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 부총리가 "연기는 있을 수 없다"며 거듭 확약했던 시책을 후임자가 뒤집어야 하는 고민이 컸던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외고를 졸업한 김 내정자의 자녀 1명이 비어문계열에 진학함으로써 외고 지원 지역 제한은 명분이 약하다는 세론이 작용했다.
하지만 교육부로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정도로 중차대한 교육정책을 여론에 밀려 포기함으로써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한 교육계 인사는 "1개월 사이에 정부 스스로 특정 시책을 없던 일로 만든 것은 전례가 없다"며 "학부모나 국민들이 교육정책을 믿지 못하게 하는 빌미가 되지 않을 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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