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이 죽게 되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15일 오전 강원 인제군 인제읍 덕적리에 사는 김범대(40)씨는 이렇게 기도했다. 폭우가 쏟아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산이 집을 덮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부인 정경순(31)씨와 두 딸 하은(6) 수아(4)를 팔로 휘감아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간발의 차로 목숨은 건졌지만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문제지만 산이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마당에 세워둔 자동차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산 하나가 무너지니까 연쇄적으로 다른 산도 따라 무너졌다”고 했다.
저녁무렵에야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먹는 게 문제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동차에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빗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3일 동안 히터 전등을 켜느라 자동차 연료도 바닥나고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못 먹어서 시름시름 앓았어요. 라디오에 귀 기울여도 피해 소식만 있지 구조 소식은 없었죠. 앞이 캄캄했어요.”
홀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내려갔겠지만 계곡 암벽 낭떠러지 길을 어린 두 딸과 부인을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추위와 배고픔, 피곤에 절어 절망이 엄습할 무렵인 17일 오후, 기적이 찾아왔다. 그의 집에 육군 노도부대 수색대원 12명이 찾아온 것. 군인들은 시체수습을 위해 수색을 나왔다가 김씨 일가족을 발견했다.
김씨는 “생각할 것도 없이 제발 도와달라고 했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한 말이 딱 맞는 거 같습니다”라고 했다.
두 딸은 군 장병들의 등에 번갈아 업히고 김씨와 부인은 군인들의 도움으로 4시간을 걸어 덕산리로 내려왔다. 김씨는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했다.
인제=글ㆍ사진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