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가 북한 미사일 실험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우리 언론은 흔히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고 논평한다. 복잡한 국제정치 게임을 스포츠 경기 관전하듯이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마뜩찮지만, 언뜻 국제사회의 일치된 뜻을 북한이 따라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상투적 수사가 못내 거슬리는 것은 위기 해법이 오로지 북한의 각성에 달렸다는 논리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리분별 외면한 추종
이 마당에도 북한을 변호할 여지가 남아있냐고 대뜸 반박할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고 본다.
전략적 게임은 겉만 보아 어떤 게 우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 안보와 한반도의 장래가 걸린 일에서 어느 한쪽을 무작정 편들거나 야유해서는 지혜로운 플레이어는커녕 눈 밝은 관전자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 제 이익을 좇는다는 냉철한 안목으로 사리를 분별해야 한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애초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공이 미국에 넘어갔다”고 논평한 이가 드문 것부터 사리에 어긋난다. 미국은 미사일 발사정보를 흘리면서 미 본토까지 위협한다고 과장되게 떠들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전파한 것은 물론, 미국의 선제공격 등 강경대응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북한의 행동이 무모한 도발임을 강조, 북한의 목을 조르는 금융제재 중단과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벼랑 끝 몸부림을 애써 외면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알게 모르게 영합한 것이다.
이런 추종적 보도는 일본 극우언론이 앞장섰지만, 우리 사회도 어느 때보다 무비판적으로 기울었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과장 선전된 탓이 있지만, 정부의 대북ㆍ대미정책을 비롯한 국정수행을 불신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본다. 진보성향 언론과 전문가도 과거처럼 ‘친북ㆍ반미’ 비난을 무릅쓰며 사태 본질을 따지는 것은 기피했다. 북한을 집중 성토하면서 미국의 정책변화 필요성은 건성으로 언급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보수적 인식으로는 정부는 구제불능이지만 사회는 제 자리를 찾았다고 기꺼워할 법하다. 과연 그럴까 싶다. 정부가 잘한다는 게 아니다. 미사일과 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주장이 미국사회보다도 적은 현실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국익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외교 원로 키신저를 비롯해 많은 미국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완고한 이념노선이 북핵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이번 사태에서도 브루킹스 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악의적 무시가 벼랑 끝 행동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낸 데사이 앤더슨 같은 이는 미국이 6자 회담을 핑계로 북한체제 보장과 핵 문제 타협 등 본질적 논의는 회피한 것이 사태의 근본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특히 지난해 북한과의 9ㆍ19 공동선언을 어긴 경제적 압박이 북한체제 붕괴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한 반면,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북아 위상을 해치고 한미 동맹을 분열시킬 뿐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미국이 정작 미사일 발사 뒤에는 위협을 낮게 평가한 것도 북한과의 대화를 피하려는 의도다. 안보리 결의도 강경대응 의지를 담은 듯 하지만, 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타협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북한문제 근본해결 촉구해야
이렇게 볼 때, 늘 공이 북한 쪽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인들보다 본질에 무지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의 안보위협을 떠들면서도 근본해결을 고민하고 촉구하지 않는 자가당착은 ‘반미는 무엇보다 위험한 자살행위’라는 영악한 처세의 지혜를 좇는 위선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애국에 앞장선 듯이 행세하고, 이런 글을 함부로 친북이라고 매도하는 일은 없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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