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마음 설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첫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울 중구 충무로 세종갤러리가 이수동, 박항률, 황주리, 이석주 등 인기작가 11명의 첫 작품과 최근 작품을 나란히 걸어놓는 ‘내 생애 첫 작품을 소개합니다’전을 연다. 작가들의 첫 개인전 출품작 혹은 학창시절 그림 가운데 ‘작품’ 이라 부를 만큼 의미 있는 것들이다.
이들 20~30년 된 작품들에는, 첫사랑만큼이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지석철(53)씨는 대학 때 그린 첫 작품 ‘투계(鬪鷄)’를 일부러 안 팔고 34년째 소장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속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 늘 작업실에 걸어 놓았던 작품입니다. 보물 1호지요.” 대학 시절 추상화, 반추상화, 극사실화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갔던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 30년 가까이 극사실화에 주력하고 있다.
아내의 미술학원 ‘셔터맨’으로 5년을 보낸 이수동(46)씨는 학생들이 돌아간 늦은 밤부터 2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멜랑꼬리’ 속의 의욕 없는 남자가, 암울했던 그 시절의 이수동이다. 이씨는 서른 살이 되던 89년 대구에서 어렵게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도록(圖錄) 제작은 지인으로부터 후원받고 대관료는 전시 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도록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이 바로 ‘멜랑꼬리’이다. “그 작품은, 시처럼 따스한 느낌의 최근 작품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언젠가 너댓 살쯤 된 꼬마 아이가 제 그림을 보고 무섭다고 우는 것을 보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때부터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박항률(56)씨는 서울예고 3학년 때 전공을 디자인에서 서양화로 갑자기 바꿨다. 그때 유화로 처음 그린 6호 짜리 그림 ‘새벽’,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앞 집을 그린 풍경화인데 지금보면 미숙하기 이를 데 없다. 물감 쓰는 요령을 몰라 손가락으로 비벼가며 그렸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는 ‘새벽’ 시리즈와 비교해보는 묘미가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는 잊고 지낸 젊은 날의 열정을 되짚어보는 자리이며 관객에게는 작가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는 19일부터 8월15일까지 열린다. (02)3705-9021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