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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역사의 원전' 2,500년 인류사의 현장 "보았노라, 기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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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역사의 원전' 2,500년 인류사의 현장 "보았노라, 기록하노라"

입력
2006.07.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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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스쿨라피우스에게 수탉 한 마리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 있다네. 잊지 않고 갚아주기 바라네.”

기원전 399년, 독배를 마시고 온 몸이 굳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닭 값을 내달라고 부탁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대 철학자의 유언 치고는 다소 어이가 없지만, 갚지 않은 닭 값이 그에게는 가슴에 사무쳤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소크라테스의 유언이 전해진 것은 플라톤의 기록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것은, 역사에 구체성을 보태고 당대인의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의 원전’이 그런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과 교수인 존 캐리가 유명인 혹은 평범한 사람의 증언을 엮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에서 발생한 역병의 현장에서부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 기록에 이르기까지 2,5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일어난 180개 사건의 목격담이 들어있다.

평범한 일상보다 격동기의 흐름, 혹은 세상을 뒤흔든 놀라운 사건을 주로 기록했다. 미국의 시인 겸 수필가 월트 휘트먼은 1865년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이렇게 증언한다.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2층의 커다란 박스에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극중의 세 인물이 퇴장하고 무대가 잠시 비어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링컨의 암살이 벌어졌다…나지막하게 억눌린 권총 소리가 들렸지만 관객 중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백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암살자는…얼굴을 객석을 향해 돌리고 엄격하고도 굳건한 목소리로 자신의 대사를 읊는다. ‘이렇게 폭군은 가도다.’ 그리고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무대 뒤쪽으로 가로질러 가서는 사라져 버린다.’

1905년 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은 세계 역사를 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날 시위는 가폰 신부가 주도했다. 시위대가 줄을 맞춰 행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들더니 칼을 휘둘러 댔다.

‘남자, 여자, 아이들이 나무토막처럼 땅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고 신음 욕설 고함소리가 하늘을 메웠다…갑자기 아무 경고도, 유예도 없이 수많은 소총의 메마른 격발음이 들려왔다…열살 된 어린 소년 하나는 교회등을 들고 있다가 총알을 맞고 쓰러졌지만 등을 떨어뜨리지 않고 꽉 쥔 채로 도로 일어나려 하는 중에 또 한 차례 총알을 맞고 쓰러져 버렸다.’ 신부의 증언은 그 어떤 기록보다 생생하다.

영국 대령 로버트 스코트는, 20세기 초 유행한 극지 탐험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내일이 마지막 희망이다. 연료는 떨어졌고 식량도 한 두 조각밖에 없다, 종말이 틀림없다.

자연사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여건이 되든 말든 내일 저장소를 향해 떠났다가 길에서 죽을 것이다.’ 스코트는 1912년 1월 18일 남극에 도착했지만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다녀간 흔적을 발견하고는 크게 실망한 채 귀환 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악천후. 일행은 차례로 죽거나 실종됐고 스코트도 목표지점을 11마일 앞두고 목숨을 잃는다. 이 기록은 그 해 11월 시신과 함께 발견됐다.

같은 해 4월 15일에는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다. 운 좋게 목숨을 건진 해리 시니어라는 사람은 아비규환의 현장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이탈리아 여자 하나가 아기 둘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아기 하나를 받아 안고…물로 뛰어들었다. 수면 위로 올라와 보니 아기가 죽어 있었다.

배의 보일러 하나가 터지면서 큰 물결을 일으켰다. 그 물결을 본 여자는 단념했다. 안고 있는 아기가 죽었으므로 놓아버렸다. 어느 보트에 올라가려 하자 한 녀석이 노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이밖에 불타는 로마,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중세 기독교 문화와 왕족의 권력 다툼 및 전쟁, 유럽 국가의 식민지 침탈과 원주민 학살, 세계 대전 등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다. 끔찍한 내용도 적지 않은데 이는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약탈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에 아쉬움도 많다. 기록의 대상 혹은 기록의 관점이 지나치게 서양 중심이다. 아시아 사건으로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정도가 있는데 그것도 서양인이 기록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전쟁을 좋아하고 잔인하다고 적었는데, 그렇다면 스페인 등 유럽인이 이들을 처참하게 살육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편적인 현장 기록이, 사건 전체의 모습을 놓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겠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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