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만 개편하는 개헌을 하자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론’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에 의해 14일 제기됐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만 하고, 그 외 논란이 많은 전문이나 영토조항 등은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정치권에 개헌론이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김 의장 제안이 주목되는 것은 5년 단임제의 문제점 극복을 위해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 안팎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개헌론의 뼈대는 2007년 개헌을 통해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해 대통령 임기 중 잦은 선거에 따른 정국 혼란과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2007년 개헌을 하면 대통령이나 의원들의 임기가 거의 단축되지 않다는 다는 점에서 적기라는 지적.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개헌론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며 개헌에는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개헌 논의를 권력구조에만 국한한다는 여야간 약속이 이뤄질 경우 검토할 수도 있다는 내부 의견도 없지 않아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이날 제안은 지난달 말 임채정 국회의장의 개헌 논의기구 구성안 등 그간 정치권에서 나왔던 숱한 개헌론 가운데 가장 명료하다.
김 의장은 제안의 이유로 “단임제의 경우 대통령이 선거에 신경을 안 써도 돼 국정운영을 더 잘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민심과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당청간 견해 차이도 단임제 대통령과 당이 선거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도 곁들였다.
김 의장은 개헌 필요성 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간 권력구조 개편, 영토조항 개정, 경제민주화 조항 강화, 토지공개념 도입 등 87년 헌법체제 전반의 재검토를 주장해왔던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공감대가 넓은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춘 만큼 현실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매년 전국단위 선거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국민의 지적에 한나라당은 답해야 한다”는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여기엔 현 정치권 판도를 흔들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듯 하다.
대형 이슈를 던짐으로써 한나라당쪽으로 기울고 있는 대선 판세의 변화를 가져올 계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여권이 제기하는 개헌 논의에는 내용, 개정 폭과 상관 없이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의원은 “이론적으로는 여야 합의만 이뤄진다면 4년 중임제 관련 조항만 고치는 원 포인트 개정도 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당장 헌법을 고쳐야 할 정도의 폐단은 아니다”라며 “2007년 대선 후보들이 개헌 공약을 내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에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의원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아니다”고 버티는 것은 개헌의 물꼬가 트이면 원 포인트 개헌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논의가 시작되면 영토 조항 수정 문제 등이 끼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장윤석 의원도 “사회 각 분야에서 남북관계 부분 등 이 조항 저 조항을 다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폭발적으로 제기돼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고려대 장영수 교수는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미시적인 개정이 바람직하다”며 김 의장의 제안에 힘을 실었지만, 경희대 윤명선 교수는 “미국의 중임제 대통령제도 첫 4년은 훈련기간이고 두번째 4년은 선거운동 하느라 국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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