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의문문 ‘사랑도 OO이 되나요’.
상황에 따라 OO안에 어울릴 단어는 끝없이 열거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덜 사랑하는 쪽이 권력을 움켜지게 마련이라는 ‘연인들의 역학관계’만을 놓고 본다면, ‘흥정’이나 ‘통역’보다는 ‘측정’ 분야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의 찌릿한 전기 자극이 심전도 검사에서처럼 그래프나 수치로 표시될 수 있다면, 애정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과도한 흑자나 적자를 미리 예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소설 쓰는 로봇공학자 칼 인옘마의 단편집 ‘인간의 낭만적 교감의 본성에 대하여’(장호연 옮김, 책세상ㆍ1만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이처럼, 그저 찌릿함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사랑을 측정하고 그 측정값을 이용해 ‘애정의 공식’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 공학자, 골상학자, 수학자, 삼림학자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키스할 때 가해지는 압력이나 손잡을 때의 열전도율을 계산하고, 애정관계를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학’이라는 학문 분과는 그 특성상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의 공식을 신봉하고 있다가도, 논리와 이성의 그늘에 도사리고 있던 애정 변수, 혹은 의식하고 있어도 통제하지 못하는 X의 습격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좌뇌와 우뇌 사이의 필연적 불일치를 감안하지 않는 과도한 계량화야말로 집착이나 미신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은 ‘사랑의 본성은 낭만적’이라는 지고의 명제를 ‘사랑의 과학적 교감을 시도하는 인간들’의 실패를 통해 반증한다. 그러나 이 실패가 이성이나 논리에 대한 감성과 낭만의 우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감정 또한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논리가 부재(不在)하는 낭만 역시 감성이 배제된 이성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기에.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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