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지역경제를 부흥시킬 인재를 찾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모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피폐한 지역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선 행정력이나 정치력보다 실물 경제를 다뤄 본 전문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현재 연봉의 10%에 불과한 급여 등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대한 봉사를 호소하며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한달 넘게 공을 들인 끝에 최근 김대기(59) 유진그룹 부회장을 정무부지사로 영입했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김 부회장은 원주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1972년 ㈜유공에 입사한 뒤 종합기획실장과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0년 6월엔 신세기통신 사장을 맡아 SK텔레콤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후 유진그룹 부회장을 지내 온 기업경영 전문가다. 김 지사는 2014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업무에 집중하고, 경제분야는 김 부지사에게 전담하게 할 예정이다.
김 지사의 설득은 치밀하고 집요했다. 김 지사는 지사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도 산업경제국에 강원도 출신 재경, 경제계 인사들의 명단작성을 지시하고 정부의 인재 풀 자료를 확보해 이중검색을 거쳐 김 부회장을 낙점했다.
김 지사는 언론에 미리 알려지면 김 부회장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 도청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섰다. 김 지사는 지난 달 중순부터 김 부회장을 수 차례 만난 끝에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사실 정무부지사 급여의 10배가 넘는 자리를 내놓고 오라는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지만 김 지사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고향발전에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김 부회장은 처음에 “공무원 사회는 전혀 생소한 분야이고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며 거절했으나 김 지사의 성의에 감복, 동의했다고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좌승희(61)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을 ‘경제브레인’인 경기개발연구원장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연구원을 이끈 좌 원장을 격이 낮은 지자체 연구원장으로 끌어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 지사측은 “최고 시장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좌 원장을 주변에서 적극 추천하자 김 지사가 직접 수 차례 찾아가 설득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00일 창의서울추진본부(창본)의 공동 본부장을 맡은 삼성테스코 이승한(59) 사장은 오세훈 시장이 정무부시장에 스카우트하려다 실패한 경우다. 이 사장은 정무부시장 자리를 거절했지만 향후 4년간 서울시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창본에 참여했다. 오 시장측은 “이 사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회사를 떠나기가 어려워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무급 자원봉사 자리인 창본 본부장 자리를 흔쾌히 허락했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아예 정무부지사를 ‘경제부지사’로 명칭을 바꾸기로 하고 CEO 스카우트에 ‘올인’하고 있다. 경제학자보다는 지역 경제와 실물경제를 훤히 꿰고 기업유치와 투자 및 외자유치를 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을 찾고 있다.
김완주 지사는 전경련과 삼성, 전북지역 국회의원 등에 적임자 추천을 의뢰한 후 주요 대기업 CEO 출신을 상대로 ‘구애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삼성의 한 간부를 점 찍은 후 삼성측에 급여의 일부를 지원해 줄 것을 부탁했고, 삼성측은 전북도에 실무급 간부를 파견하는 형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 관계자는 “정무부지사의 연봉이 6,000여만원에 불과해 CEO급 인사를 데려오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업무추진비나 출장비를 올려주는 등의 방식으로 급여를 최대한 올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CEO급은 아니더라도 실물경제 전문가들을 도정이나 시정에 적극 참여시킨 경우도 적지않다. 2004년 전남도의 투자유치심의관(국장급)으로 파견돼 나온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마케팅팀 허창일(51) 부장은 현재 전남도의 대형 프로젝트 자금조달 추진과 국내ㆍ외 기업유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광주시도 지난해 1월 투자유치기획단장에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시스템 LSI사업부 전략마케팅팀 부장을 지낸 김영복(47)씨를 위촉, 기업투자유치와 프로젝트 발굴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춘천=곽영승기자 yskwak@hk.co.kr전주=최수학기자 sh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