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연개소문 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신라 중심의 역사를 기술한 김부식에서부터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연개소문에 대한 식자들의 일관된 인식은 임금을 시해하고 정권을 찬탈한 역적이자 독재자다. 당 태종 이세민도 이런 패덕을 대(對) 고구려전쟁의 명분으로 세웠다.
제 형제들을 참살하고 아버지 고조의 권좌를 빼앗은 이세민이 그런 명분을 내세운 것은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었다. 연개소문에게는 또 당과의 무모한 대결로 고구려의 국력을 피폐케 해 결국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덧씌워진다.
▦ 그러나 한말의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을 위대한 혁명가로 평가했고, '한국통사'를 지은 박은식은 그를 독립자주의 웅혼한 기상을 지닌 우리 역사상 제1 인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 사료들에는 당 태종이 연개소문을 필생의 라이벌로 두렵게 여긴 흔적이 드러나 있고, 그가 연개소문에 쫓겨 간신히 목숨을 구하는 내용의 중국 전통가극 경극(京劇)도 네 종류나 전승돼오고 있다. 신채호는 나아가 연개소문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도모하려 했다며 북경 근방의 고구려 유적과 현지의 전설을 증거로 제시한다.
▦ 요즘 TV드라마를 통해 연개소문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또 다른 영웅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다.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수신(水神) 하백의 딸 유화부인과 정을 통해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워낙 귀신같이 활을 다루는 바람에 당시 명궁에 붙이는 보통명사 '주몽'을 이름으로 얻었다.
부여국 왕실에서 핍박 받다 물고기와 자라 등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탈출한 뒤 유랑 끝에 졸본과 비류국을 멸해 고구려를 세우고, 다시 그의 아들 온조가 남하해 백제를 건국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건국신화를 구성한다.
▦ '주몽'과 '연개소문' 모두 사극으론 이례적인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광개토대왕을 다루는 작품도 준비되고 있어 동북아의 패자(覇者)로 일세를 풍미했던 고구려 영웅들의 부활열풍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기획시점으로 보아 이들 드라마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격의도가 담겨있지만, 이런 유의 영웅드라마는 자칫 왜곡된 국수적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친 자기비하적 역사인식의 확산이 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이 정도 열광을 그런 시각으로 시비할 일은 아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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