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두툼한 신간 한 권을 보고 반색을 했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서 낸 '한미FTA 국민보고서'란 책이다. 많은 학자들이 분야별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한 다양한 연구보고서들을 728쪽에 담고 있다.
한ㆍ미 FTA를 '제2의 한일합방'으로 규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을 탐욕스럽고 교활한 침략자로, 한국 정부는 미국에 놀아나는 철없는 매국노로 그리고 있다.
반색했다고 해서 시일야방대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과 같은 이 책의 분위기에 기자가 동감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용보다는 필자와 형식이란 기본적 요소를 갖춘 한ㆍ미 FTA 관련 연구서가 나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호감을 느낀 것이다.
서둘러 추진한 탓인지 한ㆍ미 FTA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드물다. FTA에 대한 연구서는 넘쳐나지만 정작 핵심인 한ㆍ미 FTA에 대한 연구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한ㆍ일 FTA를 추진하면서 정부는 많은 연구용역을 의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대책을 준비했다. 보고서만도 1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운동본부가 출간한 그런 종류의 방대한 연구서는 반대파가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추진 주체가 국민을 설득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진작 냈어야 했다.
이런 정부측의 준비 부족 때문에 한ㆍ미 FTA에 호감이 있어도 자신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논거가 부족해 소신마저 흔들린다는 개방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ㆍ미 FTA 협상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중책을 맡았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학자 등 찬성할 법한 사람들까지 반대하고 있다. 여론 흐름도 주요 방송사의 최근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찬성에서 반대로 물줄기가 바뀌었다.
반대파를 뜯어보면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협상 반대파와 정부의 미덥지 못한 협상 자세와 능력을 의심하는 졸속 반대파다. 협상 반대파는 농민 영화인 등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들과 본질적인 의구심을 가진 소신파들이 주력이다.
이에 비해 졸속 반대파는 협상 자체의 타당성 보다는 절차와 과정, 정부의 준비 자세에 강한 의구심을 가진 일종의 변수 그룹이다. 협상 반대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졸속 반대파는 정부가 적절히 대응했다면 설득할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졸속협상 자체를 부인하며 이해를 구하는 설득보다는 해명과 홍보에 치중하고 있는 터여서 협상이 횟수를 거듭해도 졸속 반대파가 줄어들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따라서 협상이 계획대로 마무리돼 비준안이 국회에 올라갈 내년 여름쯤이면 한ㆍ미 FTA가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마치 해방직후의 좌우익의 찬탁ㆍ반탁 대립 같은 대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믿을만한 한ㆍ미 FTA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차대조표가 있으면 득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손익계산서와 한국경제의 건강을 체크해볼 수 있는 현금흐름표가 자연히 나오게 된다.
이를 위해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민관합동팀을 구성하거나 외국의 명망있는 기관에 보고서 작성을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결과는 소모적 정쟁을 예방하고 한ㆍ미 FTA의 진퇴에 대한 국민적 중지를 모을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진실은 강하기 때문이다.
김경철 경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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