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랑 식사하게 된 사람은 대체 누구야?"
'버핏과의 점심' 자선경매가 62만100달러에 낙찰됐다는 소식에 친구들의 관심이 쏠렸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랬을지,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열린다는 버핏과의 오찬 경매 낙찰자들은 얼마나 만족스러워했는지….
그러다 한국에서는 과연 어떤 인물과 함께 식사하는 경매가 인기 있겠냐는 이야기로 흘렀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같은 영적 지도자들, 빼어난 작가나 예술가들, 그리고 인기절정의 운동선수나 연예인들 이름이 오르내렸다.
● 한국에서 식사경매를 한다면
그런데 소문난 부자는 아무도 꼽지 않았다. 떳떳하게 많이 벌어서 멋지게 잘 쓰는 부자가 꽤 있는데도 '가진 자들의 아름다운 나눔'에 대한 인식은 실제보다 낮은 듯하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의 천문학적 기부를 모를 리 없지만 그 배경을 석연치않게 여기는 정서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 느낌이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선경매가 결코 나쁠 리 없다. 낙찰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경험이나 지식을 전달받으면서 기부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특히 36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해서 '바늘 구멍을 통과한 낙타'로 비유되는 버핏의 경우는 멋지게 나누고 떠나는 삶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행사가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것은 가진 자들끼리 하는 일'이란 오해나 편견을 조장할까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정이 많은 한국인은 대체로 매스미디어에 보도된 눈물겨운 사연이나 천재지변의 희생자들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연다.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며 교통비를 구세군 냄비에 넣기도 하고, 상금이나 장학금을 기부함으로써 기쁨을 더 큰 축복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결혼 축의금이나 장례식에 들어온 부의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선진형 계획기부, 즉 자신의 연금이나 유산의 일부나 전체를 기부하기로 미리 약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근 한 친구의 유언장에 증인으로서 서명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두 자녀가 부모의 유산을 둘러싸고 불필요한 갈등이나 불화를 겪지 않도록 부동산과 저축, 보험, 심지어 가구나 책까지 어떻게 나누라고 명문화해 뒀으니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그 재산의 일부는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자원봉사도 하는 기관에 기부해달라는 부분도 있었다. 그 자녀들도 장차 엄마처럼 멋진 나 눔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친구가 더욱 훌륭해 보였다.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 내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르잖아? 얼마 안되는 재산이나마 이렇게 미리 유언장으로 확실하게 밝혀두면 무엇보다 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거야."
자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껴 모은 재산을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을 공익기관을 알고 있는 것 또한 상당한 기쁨이라고 했다. 혼자 두 남매를 키우느라 바쁘게 일하면서도 그 친구가 늘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가 확연해졌다.
● 감동 준 친구의 유언장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증언하는 나눔의 기쁨과 행복은 결코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부자 축에는 들지 않지만 재산을 뜻있는 일에 써달라고 기부하는 분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그런 분들과 마주앉아 식사하면서 평생 힘들여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인간적 욕망과 집착을 어떻게 극복하고 결단을 내렸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가족들의 반응과 자신의 기분은 어떤지 속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분들과 식사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김경희ㆍ한국유니세프 세계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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