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혼사가 사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이렇게 우러러 호소하고 엎드려 청하옵건데, 잘 헤아려보신 후 휴가를 주소서. 사또님께서 처분해 주시기를 천만번 간절히 바라옵니다.”
조선 후기 지방 관아 이방의 휴가신청서 모범 답안이다. 이렇게 조선 시대에 일반 백성이나 서리(胥吏)들이 수령에게 청원을 할 때는 흔히 마지막에 “이렇게 우러러 호소하오니…천만 번 간절히 바라옵니다”(玆以仰訴爲去乎 伏乞參商敎是後 下燭其情地 千萬望良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라는 문구를 넣어 ‘격식에 맞춘’문서를 만들었다.
집이나 땅, 노비 등을 사고 판 문서에는 보통 “이후 자손이나 문중에서 허튼 소리를 하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 잡을 것”(日後子孫族屬中 如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 告官卞正事)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조선 사람들은 갖가지 일로 관에 탄원을 하거나 소송을 벌일 때, 물건을 사고 팔았을 때마다 여러 가지 공사(公私) 문서를 갖춰야 했다. 하지만 변호사, 대서사(代書士), 공증인도 없던 당시에 일반 백성들에게 문서 작성은 매우 낯설고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서식 작성의 길라잡이로 큰 인기를 끌었던 ‘유서필지’(儒胥必知ㆍ사대부와 서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전경목(고문헌관리학) 교수팀에 의해 처음 번역돼 나왔다.(사계절 발행)
1800년 전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필지’는 당시 널리 사용되던 공사 문서의 서식을 임금에게 직접 청원하는 ‘상언’(上言), 백성이 수령에 올리는 소장(訴狀)인 ‘소지’(所志), 거래 계약서인 ‘문권’(文卷) 등 7가지로 나눈 뒤 ‘모범 예문’까지 곁들여 제시한 귀한 책이다.
부록으로 ‘하오니’(爲去乎) 등 244개의 이두(吏讀)를 소개하는 사전까지 곁들였다. 전경목 교수는 “조선 후기 공사 문서를 최초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이를 통해 당시 삶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투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에 나타난 조선 후기의 생활상은 사뭇 놀랍다. 특히 인사청탁 문서 작성 요령이 버젓이 소개돼 있어 당시 청탁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공공연한 일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소인이 아전 직임을 수행한 지 여러 해 되었는데…특별히 하해와 같은 은택으로 수령께 편지로 부탁해 직임을 바꿀 때 좋은 자리에 뽑힐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천만번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어찌 소홀히 하였겠느냐. 전에 부탁해 두었지만 실효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마 직임이 바뀔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다음 번 회답을 기다려 보아라.”
가뭄이 발생했을 때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시행되는 환곡(還穀)이 평시에는 강제 할당되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수단이 됐음도 알 수 있다. “제 이름이 소호(小戶ㆍ환곡을 나눠주는 호)에 편입되었습니다. 감히 백성된 도리를 회피하고자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막중한 나라의 곡식을 받아먹고 기한 내에 다 갚지 못하면…제 처지를 각별히 생각해 면제해 주시길 천만번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두 이처럼 면제 받기를 꾀한다면 환곡을 배정할 호가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번거롭게 호소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유서필지’는 이밖에도 농본주의 조선에서 사적인 도축을 금했던 소를 잡기 위해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리는 편법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사실도 보여준다. 돈이 필요해서 땅이나 집을 팔았다가 후에 돈이 생겼을 경우 구입자에게 그 땅과 집을 되팔 것을 요구하는 ‘권매’(權賣)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