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1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연령 이념의 균형을 맞추는 탕평 인사로 당을 화합 시킬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조만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만나겠다"고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대리전으로 흘렀던 대표 경선 이후, 예상되는 후 폭풍이 그만큼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강 대표는 "정권 창출을 위해 생활 태도부터 영혼까지 새롭게 바꿀 것"이라며 "경선 기간 중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부터 끊겠다"고 다짐했다.
_전당대회장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나를 버렸다'고 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의 강한 저항이 예상되는데 뒷감당이 되겠나.
"누굴 위해 나를 버리다니, 내가 미쳤나. 2004년 당이 탄핵 역풍에 몰려 50석도 못 건질 상황일 때 당 구하는 즉효 약이 당시 박근혜 의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대를 메고 바람을 잡아 박 대표 당선에 기여했다. 당시 서열로 보면 내가 대표가 돼야 했지만 박 대표를 위해 내 몸을 버렸다는 얘기다. 과거지사를 말한 것이지 앞으로 박 대표를 위해 나를 버리겠다는 게 아니다."
_그래도 경선에서 박 전 대표의 덕을 본 건 사실 아닌가.
"대선주자 대리전은 저 쪽(이재오 후보측)에서 먼저 시작했다. 자기들은 절대 대리전을 안 했다고 하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도 열심히 뛰었다. 대리전을 시작한 것은 저 쪽의 작전 실패다. 나는 박 전 대표에게 도와 달라고 한 적 없다. 박 전 대표가 스스로 화가 나 움직인 것이다."
_그렇다면 앞으로 박 전 대표를 좀 더 배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실 박 전 대표와 함께 전당대회장에 들어가는 게 득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렇게 안 했다. 나도 한 달 전까지 대권 주자였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있다. 특정 주자의 손을 붙잡고 매달리고 아부하면서 내 편을 들어 달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공정하게 하겠다. 대선 후보 경선은 내년에 시작된다. 올 12월까지 당을 변화시켜 국민에게 다가 가도록 사심 없이 열심히 뛰겠다."
_이재오 최고위원이 오늘(12일) 첫 최고위원 회의에 불참했다. 대리전의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은데.
"자꾸 갈등을 부추기지 말아라. 시골 면장 선거를 해도 후유증이 있는데 제1 야당의 당수 를 뽑는데 어떻게 후유증이 없겠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해결 된다. 이 최고위원은 솔직
담백하고 날이 분명한 투사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 내 마음 속에도 갈등의 씨앗이 별로 없다. 이 최고위원에게 엄청난 표를 줘 당선시킨 국민적 여망이 있는 만큼 그의 생각도 당연히 반영하겠다.
_최고위원 회의를 친 박근혜 진영이 장악, 이 전 시장측의 위기감이 크지 않겠나.
"인사 탕평책을 쓰겠다. 어제 전당대회에서 만들어진 비빔밥에 부족한 재료가 나물인 지 고기인지 양념인 지 잘 알고 있다. 정성을 들여 균형을 맞추면 더 맛이 좋은 비빔밥이 나올 것이다."
_당이 예전처럼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지는 것 아닌가.
"(손을 내저으며)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전 시장이든 누구든 링 위에 나오면 월드컵의 대(對) 스위스 경기처럼 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관리하고 모시겠다."
_이 전 시장을 만날 생각이 있나.
"전화도 하고 편하게 만나겠다. 조만간 박 전 대표와 손학규 전 지사, 원희룡 의원까지 다 만나겠다. 카메라 프래시가 번쩍번쩍 하는 가운데 만나서 쇼 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직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나도 이제 벼슬이 높아 졌는데 천천히 하겠다.(웃음) 앞으로는 그 분들이 심판인 내 눈치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_대구ㆍ경북 출신인 게 문제가 되면 대표직을 버리겠다고 했는데.
"출신 지역 문제만이 아니다. 내년 대선 후보가 정해졌을 때 나보다 여건이 좋아 몇 표라도 더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권 창출을 위해 뛰어든 내가 꼭 대표를 할 이유가 있겠나. 내일 모레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만 둘 수 있다. 지난해 말 원내대표로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버티면 얼마든지 임기를 채울 수 있었지만, 깨끗이 사표를 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만 뒀다. 자리를 떠나는 게 자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_최고위원 5명의 색깔이 다소 우편향이고, 지역적으로 편중됐다는 지적이다.
"북한 미사일 사태가 터져 전당대회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흐르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선 잘 됐지만, 개혁 등의 면에선 손해가 크다. 권영세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돼 당에 활력을 주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인사와 정책으로 당의 균형을 맞추겠다. 젊은 의원들을 많이 발탁해 일 할 분위기를 만들겠다."
_지명직 최고위원 인선과 당직개편 구상은.
"뒤늦게 경선에 참여해 앞만 보고 달려 왔기 때문에 생각해 놓은 게 전?없다. 경선 과정에서 누구한테 당직을 주겠다고 귀띔하고 연대한 일도 없다. 13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경선 결과를 보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은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다."
_이재오 최고위원 보다는 대여(對與) 투쟁을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데모만 잘 하면 되거나 들판형 투사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그 시절엔 와일드 피칭을 해 데드볼을 던진다 해도 괜찮았을 지 몰라도, 지금은 용납이 안 되는 시대다. 그런 걸 잘 알아야 노무현 대통령 식의 눈물 한두 방울에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전략적으로 막을 수 있다. 나는 마음을 역사 속에 버렸기에 더 독해질 수 있다. 제2의 김대업 사건 등이 닥쳤을 때 투사형이 아닌 순수한 이미지인 내가 광화문 네거리에 드러누워 버리면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_첫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할 때 기분이 어땠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6월 대권 꿈을 접고 대표 경선 출마 결심을 하면서 인생을 전부 걸었다. 5선 의원이 되는 동안 당과 국가를 위해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 몸 던져 정권 창출을 위한 밀알이 될 수 있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모든 생활 태도와 영혼까지도 새롭게 변화시키고 당과 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 몸부림을 쳐 보겠다. 담배도 끊겠다."
_대권 꿈은 완전히 접은 건가. 이번이 아니면 다음 기회도 있는 것 아닌가.
"내년에 대선 후보를 잘 뽑아 정권을 창출하는 게 목표다. 대표를 잘 하는 것도 대통령이 되는 것 못하지 않게 중요하다.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
_경선에서 이길 걸로 예상 했나.
"초반엔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표 쪽 후보가 너무 많이 나와 표가 흩어지는 바람에 중간에서 힘들었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이재오 후보 쪽에 섰던 지역 운영협의회위원장들이 우수수 내 쪽으로 넘어 오는 게 보였다. 막판 판세가 박빙이었다는 언론 보도는 틀린 것이다.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선 내가 뒤졌지만, 그게 높다고 국민적 지지가 높은 건 아니다. 메이저 리그(대선 후보 경선)와 마이너 리그(대표 경선)는 다르다."
_선거 비용은 얼마나 썼나.
"늦게 경선을 시작한 데다 준비한 것도 없어서 쓸 데도 없고 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몇 년 전 최고위원 경선에 나왔을 땐 돈이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_어떻게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건가.
"당이 속도감 있게 변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덕성을 회복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관용하는 당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우리끼리 당을 정화하는 '클린 핸즈(Clean Hands) 본부'를 만들겠다. 내 손이 깨끗해야 상대방이 잡아 주지 않겠나. 나 자신부터 국민에게 무사안일하고 오만하게 보이는 자세를 고치겠다."
_'대선 6개월 전 대선후보 선출 규정' 등 경선 룰을 고치자는 의견도 많다.
"지난해 당 혁신위에서 논란 끝에 정한 일정이고 원칙이다. 고치는 것 자체가 유불리 논란을 일으킨다. 경선 규정은 그대로 간다."
_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한 생각은.
"정부가 전략적 사고 없이 북한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 결과다. 6자 회담 틀 안에서 해결하자고 하든지, 인도적 지원 외에는 강경하게 대처하고, 유엔 제재 문제는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춰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일본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한 것은 적절치 않다. 당 공식 기구에서 깊이 논의해 당 입장을 정리하겠다."
_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데.
"경제 대국이 되려면 FTA를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무조건 내일까지 숙제를 내야 하듯이 졸속으로 해서 손해를 보면 안 된다. 특히 농업 분야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정권이 엉터리로 추진하면 제동을 걸겠다."
_개헌에는 여전히 반대인가.
"여권이 대연정, 소연정 주장의 연장 선상에서 판을 흔드는 것이다. 국회의원 정수의 과반도 안 되는 여당이 3분의 2 의석이 필요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억지로 애드벌룬을 띄워 판을 흔들려고 한다. 일절 응할 생각 없다. 말도 꺼내지 말라. "
_김병준 교육, 권오규 경제부총리 인준에 동의하나.
"노 대통령이 5ㆍ31 지방선거에서 분노한 민심을 듣고도 '세금 폭탄'과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주동한 분을 보훈 인사, 코드 인사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기본적 인식이다. 청문회를 지켜 보겠다."
정리=최문선기자 moonsun@hk.co.kr사진 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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