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내 필름을 본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피드백 때문입니다. 당신 때문에 마약을 끊었다는 사람, 전쟁의 폐해를 알게 됐다는 사람….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내 필름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세계 최초의 비디오 저널리스트(VJ) 존 알퍼트(57)가 제3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이 마련한 회고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의 UN 연설 때 인터뷰 수락을 받은 유일한 외국기자, 베트남전 이후 캄보디아에서 취재를 허락받은 첫번째 미국 기자, 걸프전 당시 검열 없이 이라크를 드나들었던 유일한 외부인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는 12번이나 에미상을 수상한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의 현대적 거장이다.
‘진실’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베리테’처럼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직설적이고 적나라하지만, 일체의 분석이나 설명 없이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35년간 미국은 물론 베트남, 쿠바, 러시아, 한국,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수백 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세계 각국에 방송해왔으며, 1972년 미디어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비영리 지역사회 미디어센터인 DCTV를 설립,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
그는 “사람마다 진실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필름을 만들 때 어쩔 수 없이 주관적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내가 하는 일은 관객들이 이 시점에서 저 시점으로 관점을 옮겨 다르게 볼 수 있도록 권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날것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진실은 너무나 참혹해서 거짓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만든 ‘바그다드 ER’은 이라크전쟁 희생자들의 모습이 너무 참담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럴 땐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후퇴하기도 하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 전달이지만,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진실이 가장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어떤 진실을 선택해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알퍼트는 “DCTV가 작은 기관이다 보니 대형 방송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않는 일들, 남들이 위험하다고 피하는 일들을 주로 해왔다”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카스트로를 처음 만났을 땐 무서워서 말도 못 걸 정도였죠. 하지만 내가 이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누구든, 어떤 일이든 멈출 수가 없는 법입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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