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업계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컴퓨터(PC), 서버 등의 장비납품 과정에서 업체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준 대가로 고객사 직원에게 일정 금액을 전달하는 관행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어 업계전반의 자정(自淨)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서버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5억원짜리 납품건이 성사될 경우 구매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실무자 개인에게 2,000만원을 전달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국내 최대 IT업체인 S전자에도 제품을 납품하면서 직원에게 리베이트를 전달한 바 있다"고 실토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에는 리베이트만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힘들어 국립ㆍ민간 연구기관의 연구원 등이 개발한 솔루션을 얹어 파는 경우도 있다"면서"이럴 경우 해당 연구원에게도 적절한 금전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국내 IT업계를 구성하는 대기업과 중소 납품업체, 국립ㆍ민간 IT연구기관 등이 불법 리베이트를 바탕으로 검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납품업체들은 리베이트 자금을 합법적인 비용으로 세탁하기 위해 또 다른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예컨대 리베이트 금액을 대표이사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부정회계 처리하는 것은 잘 알려진 수법이다.
이 방식도 한계에 이를 경우 회사에 재직하지 않는 유령사원들에게 급여 비용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영세한 인터넷 광고업체들을 통한 수법도 자주 이용된다. 300만원짜리 인터넷 광고를 게재하면서 수천만원대의 영수증을 받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광고는 기준 가격이 없어 실제 비용보다 훨씬 큰 금액이 적힌 영수증을 받아도 별 문제가 없다"며 "영세한 광고업체들은 단 몇백만원도 아쉽기 때문에 보통 이런 제의를 거절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납품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2004년 납품비리 사건에 연루됐던 글로벌 IT업체의 한 부서장이 실적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올해 초 자살한 사건은 이 같은 업계 현실을 뚜렷이 보여준다.
또 언젠가 독립해 창업하려는 젊은 대기업 실무자들이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리베이트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04년 글로벌 서버업체 I사, 국내 통신업체 H사 등 IT업계 납품비리에 대한 처벌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며"뿌리 깊은 리베이트 관행이 한국 IT업계를 위기로 몰고간 요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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