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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개발이 아닌 주택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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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개발이 아닌 주택정책

입력
2006.07.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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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서울역의 노숙자였던 40대 초반의 이씨. 그는 젖먹이 아들과 아내와, 그가 친형제처럼 우애를 나누는 '동생들'과 함께 현저동의 열 몇 평짜리 집에서 산다. 방 두 개와 화장실, 부엌이 건물의 전부이고 그 곁에 일자로 난 마당이 있다. 곧 재개발이 될 것이라며 이 동네도 집값은 최근 엄청 뛰었다. 그는 월세로 이 집에 들어있다.

그가 하는 일은 철거용역이다. 재개발을 하는 동네에 가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끌어내고 낡은 집을 부수는 일이다. 그가 사는 집도 언젠가는 재개발에 헐려나가고 그도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생업은 어이없지만 배운 것 없고 부모도 없고 그를 도와줄 인맥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 일이 아니면 그는 다시 노숙자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재개발과 가난의 악순환에 대해서 체계적인 논리를 익힐 만큼 배우지는 못했지만 평생 맨주먹으로 악전고투한 결과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우리들에게 공짜밥을 주지 말고 집을 구해 달라. 막노동을 해서라도 끼니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집 없이 우리는 계속 떠돌아 다녀야 한다."

● '공짜밥보다 집을'

노숙자들이 돈을 모으면 찾는 것이 자존감을 살릴 자기만의 공간이다. 노숙 다음 단계는 쪽방이다. 좀더 형편이 좋으면 고시원이다. 쪽방은 하루 7,000원, 고시원은 한 달에 17만원쯤 하는데 쪽방은 하루 단위로 돈을 내도 되는 반면 고시원을 한 달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루 7,000원도 낼 여력이 없으면 다시 역 계단으로 돌아온다.

또 다른 40대 중반의 김씨. 그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대지 23평짜리 단독주택에 다섯 식구가 산다. 그의 집은 서울시의 뉴타운 계획에 들어있다. 3년 전만 해도 평당 300만원 하던 땅값이 최근 3배 가까이 뛰었다. 그래봤자 뉴타운에 들어서는 아파트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곳은 재개발할 때 땅의 80% 정도의 지분을 인정해주니까 그런 평수의 아파트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의 집에는 마당이랄 것도 없지만 그는 골목에 궤짝이라도 놓고 꽃도 심고 텃밭을 만들었다. 아파트에는 그럴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재개발되는 아파트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보상금을 받아서 다시 더 싼 곳, 마당 있는 집을 찾아 나설 참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서울성곽 옆으로는 한국전쟁 때 거적집으로 시작된 산동네가 지금도 있다. 이곳도 곧 재개발될 것이라는 기대로 집값이 계속 뛰고 있다. 벌써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

● 토박이들을 내모는 뉴타운

조그만 단독주택들로 복작복작한 동네를 번듯하게 바꾼다는 것을 과거에는 재개발로 불렀고 요즘 서울시는 뉴타운 계획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 실질적인 내용은 비슷하다. 원래 있던 집들을 모조리 부수어 마을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세운다. 용적률이 빡빡해지다 보니 아파트로 만든다고 해도 실제로 늘어나는 거주지는 2배를 넘지 않는다.

반면 집값은 몇 배로 뛴다. 벽돌처럼 찍어내는 아파트 건설비가 왜 그렇게 비싸지는지는 대규모 단지 개발이 끝난 후면 터지는 공무원과 조합 간부들의 뇌물수수 사건이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아니 신문마다 등장하는 아파트 광고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뉴타운인지 재개발인지 이뤄지면 단독주택에 복작거리며 살던 토박이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난다.

아파트란 기본적으로 관리비가 들어가는 곳이다. 단독주택처럼 생활비를 주인이 조절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살기엔 사정이 녹록지 않다. 살던 곳을 떠난 가난한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 정착하느라 몸도 고달프고 돈도 몇 배나 더 써야 한다. 이것은 보상받지도 못한다.

나는 강남의 아파트에 산다. 주말이면 내게 없는 부동산을 사고 팔라는 전화가 빗발쳐서 쉬지도 못할 지경이더니 정부의 강경한 부동산대책 이후 전화가 끊어졌다. 다행이다. 정부의 정책은 분명 과거보다는 진일보했다.

부동산세 감세니 뭐니 주춤할 이유가 없다. 대신 아직도 판교니 송파니 마을을 부수고 아파트 단지를 지어올리는 신도시 개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집을, 마을을, 토박이를 살리는 주택정책으로 나가주기 바란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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