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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멜랑콜리 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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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멜랑콜리 산초

입력
2006.07.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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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해 보이는데 도박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친구 몇이 어울려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갔었다.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어서 열흘 내내 그 혼자 운전했다. 우리는 차를 로시난테라 이름 붙이고 그를 산초라 불렀다.

그 불쌍한 산초 덕분에 우리들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와 세르반테스는 안달루시아의 매력을 만끽하며 편안히 유람했다. 산초는 고단해 했지만 다행히 운전을 즐겼다. 세비야에서 말라가의 숙소로 돌아가던 밤, 우리 차밖에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가 나른히 말했다. "운전대를 잡으면 고독하고 멜랑콜리해지는데, 그 기분이 참 괜찮아."

그곳 고속도로 휴게소들에는 예외 없이 간이 슬롯머신이 있었다. 산초는 늘 재빨리 요기하고 거기 매달렸다. 우리가 1유로나 50상팀 짜리 동전을 모아주면 어찌나 좋아하던지. 대개 20유로쯤 따와서 갓 짠 오렌지주스나 뜨거운 커피, 혹은 레몬 아이스크림을 한턱 냈다.

돈이 아주 많아서 실컷 잃도록 도박을 해보는 게 산초의 소원이란다. 산초는 20대 독일 유학 시절 도박에 눈을 떴다고 했다. "잭 포트가 터지니까 기계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울려 퍼지는데, 그 전율이란!" 과연 악성(樂聖)의 나라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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