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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PC방 르포/ 돈먹는 블랙홀… "오늘만 170 날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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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PC방 르포/ 돈먹는 블랙홀… "오늘만 170 날렸어"

입력
2006.07.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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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해질 무렵 서울 영등포역 인근 상가. 덕지덕지 붙은 간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혔지만 즐비한 성인PC방들의 간판에는 끝내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 행인들이 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소등(消燈)영업’이다. 영업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경찰의 단속을 피하려는 것이다.

한 곳을 골라 들어가자 침침한 조명과 담배 연기가 먼저 맞는다. ‘일제단속’ ‘집중단속’을 외쳐대는 신문과 방송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무 명 남짓한 손님들이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 시킨 채 마우스를 놀리고 있었다.

“손님, 저 안쪽이 시원합니다.”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나타난 20대 여종업원이 자리로 안내했다. 컴퓨터가 설치된 부스에는 광마우스와 IDㆍ비밀번호 입력용 숫자키 패드만 놓여 있을 뿐 키보드는 없었다.

“탄산음료, 주스, 간단한 식사가 서비스로 준비돼 있습니다.” 게임머니 5만원을 건네자 종업원이 말했다. 여느 PC방들이 받는 시간당 1,000원 내외의 사용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식사까지 무료라니.

그 의구심은 ID와 패스워드가 적힌 전표를 받고 게임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안돼 풀렸다. 고스톱 게임 한판마다 오가는 판돈의 5%가 증발하고 있었다. 의아해 하자 종업원은 “다른 데는 ‘꽁지 9개(수수료 9%)’를 떼는 곳도 있어요”라고 맞받았다.

도박의 처음은 다 이런 것인가. 5만원으로 고스톱 게임을 시작했는데 짧은 시간에 돈이 5배로 불었다. 하지만 3고에 피박, 광박까지 두어 차례 맞자 25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다.

아까부터 꿈쩍도 않고 앉아 연기만 내뿜던 건너편 자리의 사람에게 담배 한 개피를 부탁했다. “오늘만 170을 잃었으니 말 걸지 마쇼.” 사내는 툭 쏘았다. “나도 150 잃었어요. 출출한데 포장마차 가서 오뎅 국물에 소주 한 잔 합시다”라는 말에 그의 팍팍한 삶은 빗장을 풀었다.

170만원을 잃었다는 박훈상(48ㆍ가명)씨는 한때 서울 성동구의 남부럽지 않은 빌라에서 살면서 강동구에 아파트 2채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의 지금 재산은 영등포역 인근의 4,000만원짜리 전셋집 하나. 하지만 그 집에는 못 간다. 도박으로 재산을 날려 식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다.

“도박으로 일어선 자 도박으로 망했다면, 도박으로 망한 놈 도박으로 다시 일어 설 수 있지 않을까도 싶어.” 일용직 노동자라고 소개한 그는 도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성인PC방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7일 자정. 박씨와 헤어진 뒤 찾은 또 다른 성인PC방. 앞의 성인PC방과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고스톱 게임이 없었다. 고스톱은 왜 없느냐는 질문에 옆에 앉은 한 40대 남성으로부터 그럴듯한 답이 되돌아왔다. “고스톱보다 포커 게임이 진행 속도가 더 빨라. 꽁지(수수료)가 자주 떨어지지 않는 고스톱은 안 깔아놓는 거야.” 앞 업소에서 음료에 식사까지 ‘무료서비스’라던 여종업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또 “업소로서는 게임머니 충전도 충전이지만 수수료 수익도 무시할 수 없다”며 “쉴새 없이 마실 거리를 나르고 재떨이를 바꿔주는 건 기본이고, 어깨 안마를 해주며 응원하는 데도 있다”고 귀띔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전 8시. 날이 훤해지고 자동차 달리는 소리와 오가는 사람들의 구둣발 소리로 바깥 세상은 활기를 띠어 가지만 어두운 성인PC방엔 담배 연기만 가득하다. 열명 남짓한 손님들은 도박의 마수에서 좀체 풀려 날 것 같지 않았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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