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중 지단의 유니폼 상의를 잠깐 잡았을 뿐인데 위 아래로 훑어보며 ‘내 유니폼이 갖고 싶냐, 경기가 끝난 뒤 주마’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욕을 했다. 내가 한 욕은 그라운드 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가끔은 그게 욕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것이다.”(이탈리아의 수비수 마테라치)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퇴장 당한 지네딘 지단(프랑스)의 ‘박치기’ 원인을 제공한 마테라치가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마테라치는 11일 이탈리아의 일간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단이 경기 내내 거만하게 굴어서 그를 모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테라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마테라치의 말에 대해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종차별 감시단체인 ‘SOS-Racism’은 ‘비열한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고, 브라질의 TV 방송 ‘글로보’는 독화술 전문가까지 동원해 “마테라치가 지단의 여동생을 매춘부라고 불렀다는 입술의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인종차별과 인신공격성 발언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뿌리깊은 축구의 인종차별
이번 대회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Say no to racism)’는 것이었다. 때문에 8강전부터는 경기전 선수들이 인종차별 반대 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지단은 프랑스어로 인종차별 반대 선언문을 낭독한 바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축구계는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지난해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수비수 카를루스에게 상대팀 팬들이 인종차별적인 노래를 불러 문제가 됐었고, 지난 2004년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A매치에선 스페인 관중들이 잉글랜드의 흑인선수인 애슐리 콜을 능멸하는 구호를 외쳐 FIFA가 스페인축구협회에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카메룬 출신의 사뮈엘 에토는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편 서포터스들이 원숭이 소리를 내 모욕을 주고 있으며 스페인 대표팀의 아라고네스 감독은 자국 선수의 훈련을 독려하며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를 겨냥해 “네가 검둥이인 앙리보다 낫다”는 말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안정환의 부인 이혜원씨도 최근 한 TV 토크쇼에 나와 “프랑스에서 마늘냄새가 난다며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고약한 인신공격
그라운드 안팎에선 선수에 대한 모욕적인 인신 공격이 이어지기도 한다. 주로 스타급 선수들이 표적이 된다. 최근 독일 언론들은 잉글랜드의 주장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 빅토리아를 집중 공격했다. 빅토리아의 핫팬츠 패션을 문제 삼더니 지나친 머리 장식과 염색 등으로 탈모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을 두고 ‘대머리’라고 묘사해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 언론들은 베컴의 여동생에 대해 ‘뚱보’라고 불렀고, 아이들을 ‘난장이’에 비유하는 등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골든볼 수상자인 독일의 골키퍼 올리버 칸도 외모 때문에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고릴라’라는 별명을 가진 칸은 분데스리가 경기 때 상대팀 팬들로부터 바나나 투척 세례를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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