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열린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계획이 재확인되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들은 2009년까지 총 정원을 2004년 정원 21만9,665명보다 7,235명 줄이고, 지방대학들은 2004년 정원 42만2,591명보다 4만3,711명을 줄인다고 한다.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을 더 많이 줄이면 어떨까? 이런 제안을 하면 당장 날아오는 반론은 "교육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건 위험하다. 교육정책은 교육만의 논리에 따라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교육 논리의 주요 근거인 '대학 경쟁력'은 교육 외적인 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가 하는 재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다.
● 지리적 위치에 좌우되는'경쟁력'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은 지리적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경쟁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 지리적 위치가 달라지면 곧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하나마나 한 가정이긴 하지만 서울대가 캠퍼스를 전라남도로 이전한다고 해보자. 그간 축적해온 서울대 파워 때문에 그래도 한동안 '전남 서울대'로 갈 학생들이 많긴 하겠지만, 비슷한 조건 하에서 '전남 서울대' 대신 '서울 연ㆍ고대'를 택할 학생들이 크게 늘 것이며 서울대 파워는 점점 더 약화될 게 틀림없다.
연ㆍ고대 중 한 대학이 강원도 동해 쪽으로 이전한다고 가정해봐도 좋겠다. 두 라이벌 대학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마 곧 '연ㆍ고대'라는 말이 사라지고 서울에 있는 어느 한 대학의 압도적 우위가 나타날 게 틀림없다.
서울에 살건 지방에 살건 우리 모두 좀 정직해지자. 세계 어느 나라의 명문 대학도 한국의 대학들처럼 지리적 위치로 거저 먹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매년 수백명의 지방대 교수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방대에서 일하다가 무엇이 맞질 않아 뒤늦게 서울로 갈 결심을 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지방대는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한 결과다.
지금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대학 경쟁력' 개념엔 이런 현실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정부보다는 일부 언론이 더 문제다. 입만 열었다 하면 '경쟁력'을 이야기하는데, 그 경쟁력의 정체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정부는 이제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니 그 효과를 기대해보자고 말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지방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추정하는지 궁금하다. 자녀를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근 한 조사에서는 어느 공공기관의 경우 지방으로 이사할 뜻이 있는 직원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사는 '기러기 부부'를 양산할 정도로 한국인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 최고다. 그건 국가경쟁력 차원에선 우리의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 삶의 질에 있어선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완료될 경우 서울-지방간 교통량만 폭증하고 직원들의 삶만 고달파진다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 아닌가.
● 여론 형성도'서울 1극' 구조
'서울 공화국'이라는 이미 설정된 '경로(經路)'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 건 불가피할 망정, 기존 경로를 강화하는 일이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국가경쟁력'을 내세워 '경로 강화'에 앞장서고 있는 일부 언론사들이 지방에 있다면, 그런 주장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론 형성의 '서울 1극 구조'가 '경로 강화'의 주요 원인은 아닐까? 기초적인 역지사지(易地思之)조차 없는 '국가경쟁력' 개념은 지금이 개발독재 시절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기에 족하다. 경로의 저주라지만, 너무 가혹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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