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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심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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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심은 힘이 세다

입력
2006.07.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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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시위는 고등학생 때였다. 내가 다니던 광주의 고등학교는 뉴스에서 전교조 사태 관련 보도를 할때 자료화면이 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교조 가입교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 내 인생의 첫 시위

하루아침에 40여명의 선생님을 잃은 고등학생들이 분연히 일어나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나섰는데, 나는 평소 호흡기가 좋지 않았었다는 자기진단을 내리고 혹시 모르는 최루탄 공세를 피해 맨 뒷줄에 섰다.

등하교하던 그 길을 따라 거침없는 행진을 하다가 큰 길에 닿기도 전에 전경들에게 막혀 우왕좌왕하던 우리들에게 훗날 한총련 의장이 된 열혈 학생회장은 외쳤다. “뒤로 돌아 갓!” 졸지에 최선봉에 서게 된 호흡기 약한 고등학생은 눈앞이 노래졌다. 당연히 바뀐 방향에서도 전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전남대생, 조선대생을 상대하던 전경들이 교실용 슬리퍼 신고 나온 고등학생들 진압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때, 어디선가 수십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나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며 시간을 벌었고, 그 틈을 타 우리들은 담벼락을 넘어 학교 안으로 우르르 도망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를 구했던 정체불명의 별동대들이 우리학교 불량서클 양대산맥이었던 ‘물망초’와 ‘소나기’ 멤버들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정학 상태이거나 정학 경험이 있는 애들이 자신들에게 정학을 내린 선생님들을 위해서 재능을 발휘한 셈이었다.

최근에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 차원에서 반FTA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 주장의 타당성과 정부측 입장의 허실을 떠나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회에 함께 했던 농민, 노동자 등 다른 분야 사람들인데, 특히 KTX 여승무원들의 모습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곱게만 자랐을, 늘 상냥한 웃음으로만 기억되던 그들이 화장기없는 얼굴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광경은 낯선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회장에 진입한 전경들이 사수대와 몸싸움을 벌인 곳은 공교롭게도 KTX 여승무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괜한 걱정이 되어 그쪽으로 몸이 쏠렸다. 하지만 너무 마음이 앞섰다. 최루탄도 곤봉도 없는, 지난날의 시위들에 비하면 심심할 정도인 그 몸싸움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엉금엉금 기어 안전지역으로 빠져나와 보니, KTX 여승무원들은 내 우려와는 달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4개월여 농성을 한 이력 때문인 듯했다. 20여년 전 겁많은 고등학생을 위기에서 구해낸 불량서클 멤버들처럼 연약한 그들을 구하고 싶었건만.

● 반FTA 집회의 소중한 경험

부끄럽지만, 이번 집회에서 연대한 다른 분야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을 내가 전부 이해한다고는 말못한다. 다만 한국영화를 지키고 싶은 영화인들의 진심 이상으로 그들의 진심도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했던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진심이 합쳐지면 더욱 힘이 세다. ‘물망초’와 ‘소나기’가 지키고 싶었던 선생님들 대부분이 훗날 학교로 돌아오셨다.

농민, 노동자 여러분 힘내세요! 특히 KTX 여승무원들!

김현석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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