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34ㆍ레알 마드리드)에게 10일은 지옥과 천당이었다.
생애 마지막 무대인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5분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 당할 때만해도 지단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프랑스팀은 우승에 실패했고 그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퇴장 당한 선수들을 일컫는 ‘가린샤 클럽’에 4번째로 가입하는 기록을 세우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 축구기자들은 이번 대회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마지막 투혼을 불태운 그를 인정했다. 대회 MVP인 아디다스 골든볼을 안기며 그의 은퇴무대를 생애 최고의 날로 만들어 주었다.
지단은 기자단 투표를 기준으로 한 점수에서 2,012점을 얻어 파비오 칸나바로(이탈리아ㆍ1,977점)와 아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ㆍ715점)를 제치고 선수 최고의 영예인 골든볼을 차지했다. 단 한번의 실수보다는 ‘늙은 수탉’ 프랑스를 정상의 팀으로 이끈 그의 땀과 노력, 18년 축구인생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단의 수상으로 월드컵 골든볼의 주인공은 98년 호나우두(브라질), 2002년 올리버 칸(독일)에 이어 3개 대회 연속 준우승팀에서 나오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결승전에서 전반 7분 선제골을 넣고 후반 어깨탈구를 참아가며 그라운드를 누빌 때만해도 승부와 관계없이 지단의 명예로운 은퇴는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장 후반 5분 지단은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와 설전을 벌인 후 갑자기 머리로 가슴을 들이받아 쓰러뜨리는 대형사고를 저질렀다.
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은 곧바로 레드카드를 뽑아 들었고, 지단은 ‘퇴장’이 ‘은퇴 무대’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운도 없었다. 마테라치를 넘어뜨리는 장면이 대기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퇴장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기심이던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 주심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라운드에 있던 엘리손도 주심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지단은 경기 후 골든볼 투표로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88년 17세의 나이에 프로에 데뷔, 2001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선수(이적료 4,500만 유로ㆍ약 540억원)로 등극했던 지단.
‘축구는 예술이다’는 프랑스 축구철학을 현실화 시킨 주인공으로 98년 조국프랑스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기고, 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의 부활을 이뤄놓고 당당하게 은퇴하는 그는 펠레(브라질)와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함께 이제 ‘축구영웅’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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