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Muhammad/Mahometㆍ 주로‘마호메트’라고 쓰는데 ‘무함마드’가 아랍어 원음에 가까운 표기이다)가 박해를 피해서 서기 622년에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랍말의 원 발음에 가깝게는 ‘히즈라’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통상 헤지라라고 한다.
헤지라를 기원으로 해서 이슬람력(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슬람력을 헤지라력이라고도 한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난 날은 헤지라력 원년 2월 26일 목요일(서력 622년 9월 9일)이며, 예언자는 추적자들을 피해서 메카 근처 남쪽 사우르산의 동굴에서 동반자인 아부 바크르(Abu Bakr)와 사흘 동안 숨어 지냈다.
이후 고된 여행 끝에 무함마드는 헤지라력 원년 3월 8일 월요일(서력 622년 9월 20일) 메디나 근처의 쿠바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에 이슬람 성회당(모스크)의 기초를 마련한다. 마침내 예언자는 헤지라력 원년 3월 12일 금요일(서력 622년 9월 24일)에 메디나를 방문해서 역사적인 금요일 예배를 인도했다.
한자말로 성천(聖遷)이라고도 일컫는 이 주가 이루어진 다음 17년 뒤에 가서 이 해를 헤지라력의 원년으로 삼게 되었다. 무슬림들은 매년 헤지라력 1월 1일을 ‘헤지라의 날’로 기념한다. 그런데, 헤지라력 원년 1월 1일은 서력, 그러니까 율리우스력으로는 622년 7월 16일에 해당한다. 이렇게 서로 차이가 나게 된 것은 우선 헤지라역이 태음력인데다가, 헤지라의 첫 해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마지막 메카 순례(헤지라력 제10년) 사이에 윤달을 삽입하는 게 ‘꾸란’(주로‘코란’이라고 쓰지만 ‘꾸란’이 아랍어 원음에 가깝다)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제9장 37절).
태음력인 헤지라력에서 매 달은 30일과 29일이 교대되므로 1년은 354일이 된다. 실제 달의 공전 주기는 29.53일이라서 한 달에 0.03일의 오차가 생기므로, 30년에 11번씩 윤년을 넣게 되고 윤년에는 연말에 1일을 더한다. 이렇듯, 헤지라력을 서력으로 환산하는 일은 조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에게는 초승달을 처음 목격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헤지라력에서 각 달은 고유한 이름을 갖는바, 1월은 무하르람(Muharram), 2월은 사파르(Safar), 3월은 라비 알라왈(Rabi' al-awwal) 등과 같이 불린다. 아부 바크르는 초기 무슬림 신봉자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들 중의 하나이며, 무함마드가 서거한 뒤 무슬림들에 의해 칼리파라는 직함을 가진, 공동체의 이맘(예배 인도자)으로 추대되었다.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적 수장이며 샤리아(이슬람 법)의 보호자이며 운영자였던 칼리파는 예언자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갖는다. 칼리파의 어원상 의미는 ‘대행자’인데, 최초의 짧은 시기에는 무슬림 공동체에서 합의를 통해 선출하였지만 이후 우마이야 왕조 때부터는 세습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최초의 정통 칼리파에 속했다.
이재현(이하 현) 앗쌀라~무 알라이꿈(평화가 당신께 있기를).
아부 바크르 와 알라이꾸뭇 쌀람~(그리고 당신께도 평화가).
현 헤지라 얘기를 듣고자 아부 바크르님을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님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듣는 게 옳은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제가 무슬림의 관습을 잘 모르는 터라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불경을 저지르게 될까 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작년부터 올 초에 유럽 사람들 일부가 만평 풍자 사건을 통해 예언자님을 모독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모르면 조심해야지요. 더구나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더욱 그래야 하구요.
아부 바크르 오호! 한국에도 당신처럼 우리 무슬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군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만평 사건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는 너무 일면적이고 편협한 것이지요. 우리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관습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거니까요. 우리를 존중한다면 우리 신앙의 근본 바탕을 존중해 줘야지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만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겁니다.
현 최초에 만평을 실은 덴마크의 신문은 우파 계열의 신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문화적 관용의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던 북유럽에도 다른 나라로부터 온 이민자를 차별하는 풍조가 생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피부 색깔과 종교가 다른, 못사는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게 유럽 우파 파시스트들의 노골적인 정치 이념이 되어가고 있지요. 결국 그 관용이라는 것도 잘 사는 백인들끼리만의 관용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지요.
아부 바크르 이민자 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에서도 심각하지요. 얼마 전 미국에서는 이민법 문제로 매우 시끄러웠어요.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험난한 순례를 했던 ‘필그림 파더’(Pilgrim Fathers), 즉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데, 이제 와서는 거꾸로 피부색과 종교가 다른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있는 겁니다.
현 헤侈捉?그런 면에서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께서는 동족인 메카의 꾸라이시부족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박해와 탄압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암살자의 살해 위협까지 있었구요. 그래서 헤지라를 택하신 건데 헤지라를 오늘날 관점에서 일종의 이산, 그러니까 디아스포라(Diaspora)로 이해해도 될까요?
아부 바크르 디아스포라는 유태인들의 역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개념이지요. 유태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수 천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과정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이 오늘날에는 거꾸로 군사적 폭력과 갖가지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통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신의 땅과 집에서 내쫓아 디아스포라 상태로 내몰고 있는 거지요.
현 이산민 혹은 난민의 역사적 체험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있답니다. 해방과 동시에 이루어진 분단 때문에 일본, 중국, 러시아, 사할린 등의 동포는 물론이고 지난 몇 년 사이에는 북한으로부터 많은 탈북자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답니다. 정치적인 고려를 떠나서 무엇보다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아부 바크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승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쉽지요. 모든 걸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서 처리하려고 하니…. 정치 얘기는 하면 할수록 답답하니까 그만 두고, 헤지라 얘기나 다시 해보지요. 그 때 거미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고 야생 비둘기가 나무 위에 앉아 추적자들의 관심을 돌리는 바람에, 우리가 동굴에 은신했던 것을 추적자들은 알아채지 못했지요.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중에 만들어진 설화라고 여기겠지만요.
현 그러니까 아부 바크르님께서는 그 때 예언자님과 단 둘이 동굴에 숨어 계셨던 거지요?
아부 바크르 무장한 많은 추적자들이 우리를 쫓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단 두 사람뿐이어서 매우 불안했어요. 그래서 동굴의 갈라진 틈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을 때 내가 이를 걱정하자 예언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걱정마시오. 아부 바크르! 우리는 둘이지만 지금 우리 사이에 알라(Allah)께서 계시니 셋이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답니다. 결국 알라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어 마침내 메디나에 이르게 된 거랍니다.
현 그렇다면, 분쟁과 갈등 때문에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늘 알라께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 수 있는 겁니까? 심지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요?
아부 바크르 알라는 우리 무슬림들이 일컫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을 얻을 수 있겠지요. 어떤 고통과 시련의 상황에서도 각자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게 되는 겁니다.
현 하지만 모든 종교는 자기의 종교만을 참된 종교라고 생각하고 참된 종교와 무신앙 사이에 분단선을 긋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는 어떻게 해야 극복이 되는 건가요?
아부 바크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물론, 서로의 차이란 처음부터 쉽게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상대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는 늘 적대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적대의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인 전쟁을 ‘꾸란’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먼저 도발하는 쪽이 책임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슬람 = 테러 집단’라는 공식은 전쟁광인 부시가 만들어낸 새빨간 거짓말인 거고,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하드(성전)란 것은 원래 신앙을 위해서 어떠한 박해 속에서도 재산과 생명을 바칠 정도로 헌신하는 무슬림의 노력을 뜻하는 거랍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산물일 따름이지요. 모든 무슬림은 평화를 원하고 사랑합니다.
현 그렇군요, 예언자께서도 늘 평화를 먼저 원하셨지요. 그럼,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
아부 바크르 인샬라!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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