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지만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의 월드컵 16강 탈락 직후 핌 베어벡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향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축구는 A매치에 국한된 의미일 뿐, 거스 히딩크나 딕 아드보카트 전 국가대표감독이 그토록 강조했던 ‘K리그 발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 프로구단, 관중 찾도록 '감동경영' 절실
누구나 동의하는 문제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 속에서 한국축구는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뿌리깊은 근시안적 승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로 인해 축구 보는 재미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국가대표팀의 성적에만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실제 월드컵 16강 탈락이 확정되자 수백만 명이 거리응원을 펼치던 월드컵의 열기는 한 순간에 식었다.
하지만 이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축구 강국들에게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K리그 발전을 바라는 일반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갈 필요가 있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 K리그의 발전 없이는 ‘월드컵 4강’은 영원히 신화로 남을 수 있다는 위기론 때문이다.
그 동안 K리그를 관중들이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국가대표팀 경기보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재미를 찾으려는 관중들에 비해 재미를 선사하려는 프로축구연맹이나 구단의 노력이 부족했다. 지난 5년간 K리그를 보기위해 축구장을 찾은 백수경씨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아닌 구단 직원들로부터 따뜻한 인사를 받아 본 기억이 한번도 없다”며 성토했고, 수원 삼성의 팬이라고 밝힌 강길중씨는 “경기당일 구장에 입구와 출구를 단 한 곳만 해놓는 바람에 쓸데없이 시간낭비를 해 가기 싫다”고 말했다. 경기내용을 따지기 전에 구단의 세심한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다.
프로 구단들의 안일한 마케팅도 도마에 올랐다. 은퇴한 세계적인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J리그를 성공시킨 일본처럼 우리도 이름있는 거물급 스타들을 영입해 ‘보는 재미를 선사하라’는 주문이다. 감독에게 “승부사가 아니라 드라마 연출자가 되라”는 요구도 있었다. 아마추어 심판을 하면서 독일 응원길에 나선 강찬성씨는 “20년이 넘는 동안 라이벌 하나 없는 프로축구 현실은 경기 전 최선을 다하겠다며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재미없는 감독의 탓도 크다”며 “감독들이 이슈를 만들어내, 팬들의 눈과 귀가 쏠릴 정도의 쇼맨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팀이 하나밖에 없는 이상한 연고지 문제도 제기됐다. 런던에서 유학하고 있는 홍순혁씨는 “런던을 연고로 한 프로 팀만 4개인데 런던보다 더 큰 서울에 한 개 프로팀만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K리그 발전을 탁상공론으로 끝내지 말고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국축구 시간표를 또 4년 뒤의 월드컵에만 맞추지 않는 장기적인 비전만 가진다면 충분히 풀 수 있을 것이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베어벡 선임 서둘러 K리그로 갈 관심에 찬물"
“K리그의 썰렁한 관중석을 보세요. K리그가 살아야 한국축구가 발전한다는 외침이 무색합니다.”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논란’으로 독일에서 월드컵 도중 불명예 귀국한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이 10일 한국축구에 대한 쓴소리와 따끔한 충고를 쏟아냈다. 신 위원은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은 승점 4점에 원정 첫 승의 좋은 성적을 냈지만, K리그는 여전히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며 “협회 등 축구인들은 팬들이 대표팀 경기만 좋아한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K리그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위주의 화끈하고 재미있는 ‘고객 감동의 축구’를 위해 모든 축구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가 당한 수난… 한국 축구문화의 웃지 못할 자화상"
그는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로 돌리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성급한 대표팀 감독의 선임을 꼽았다. 그는 “월드컵도 안 끝났는데 왜 핌 베어벡 감독을 서둘러 대표팀 감독에 임명했는지 모르겠다”며 “16강 진출실패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K리그에 어떻게 접목할지 논의하는 것이 협회나 연맹 등이 우선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대표팀 선수와 감독이 비판의 성역이 돼 버린 한국축구풍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나라는 대표선수나 감독을 비판하면 곧바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매장된다. 변덕스런 날씨로 부상자가 속출했던 스코틀랜드 훈련캠프 선정 등 이번 월드컵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운용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 좋은 성적을 낸 나라의 대표팀은 어느 정도 언론의 견제와 비판 속에서 전력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스위스전 당시 두번째 골에 대해 “볼이 수비수를 맞았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아니다”고 해설, 축구팬들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고 중도 귀국한 아픈 기억을 다시 건드려보았다. 그는 “이제 잊었다”면서 “한국축구문화의 웃지 못할 자화상이다. FIFA도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이제 국내에서도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터뷰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축구는 더 거칠고 빠르고 압박이 심할 것”이라고 전망한 그는 “따라서 한국축구도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기술축구를 구사해야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 남아공 다음 잔치 준비 잘 되나
이제 세계 축구팬의 시선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으로 향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와 월드컵 조직위 등은 2010년의 대회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걱정은 월드컵 경기장 등 시설확충문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은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엘리스파크 스타디움 등 9개 도시, 10개 구장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5개 경기장은 기존 건물을 활용하지만 나머지 5개 경기장은 신축할 계획. 세계축구연맹(FIFA)이 2008년 현지에 조사팀을 파견해 경기장 신ㆍ개축 과정 등을 평가할 계획인데 이를 충족시킬지 의문시되고 있다.
올 3월 선거에서 케이프타운 시장으로 선출된 야당인 민주동맹(DA)소속 헬렌 질리는 전임 시집행부가 추진해온 경기장 조성계획을 중단시켰다. 경기장 건설에 드는 1,600억~2,400억원이 케이프타운 1년 예산과 맞먹어 시가 이를 모두 부담할 경우 재정파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결국 5월말 시와 주정부, 정부가 회동을 가진 끝에 가까스로 공사착수에 합의하고 비용조달문제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공항, 대중교통, 호텔 등 관련시설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다. 요하네스버스공항과 요하네스버그시, 프리토리아를 삼각으로 잇는 고속철도인 하우트레인(GAUTRAIN)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3조2,000억원의 사업비가 드는 하우트레인은 시속 180km로 달리는 고속철도로 54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대형공사인데도 아직 착공조차 못해 대회 이전에 준공될 지 불투명하다.
치안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ㆍ인종차별정책)에서 비롯된 극심한 빈부격차가 높은 범죄율을 조장하고 있다. 지난달 말 요하네스버그 도심에서는 대낮에 무장갱단과 경찰이 총격전을 벌여 경찰관 4명을 포함, 12명이 사망했다. 남아공의 한 지역신문은 2일 “치안문제 등으로 남아공이 월드컵을 제대로 치를 수 없을 것에 대비해 FIFA가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으며 대체지로 호주가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남아공 정부는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고, 제프 블래터 FIFA 회장도 “남아공의 월드컵 준비에 FIFA는 물론 시장(market)도 신뢰하고 있다”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월드컵을 남아공이 성공적으로 열기 위해서는 치안, 대중교통 체계 등 사회전반의 인프라를 좀 더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남아공은 어떤 나라?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남아공의 인구는 4,420만명, 면적은 한반도의 5배에 달한다. 1952년 FIFA에 가입했으며 등록축구선수는 52만4,700명이고, 클럽수는 1,500개. 96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우승했으며 2회 연속본선에 진출한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1승1무1패를 거뒀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6년 대회에는 지역예선에서 떨어져 독일 땅을 밟지 못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월드컵 스타들, 흥하고… 망하고
월드컵 때문에 뜨고, 월드컵 때문에 무너졌다.
AFP통신이 10일(한국시간) 2006 독일월드컵의 승자와 패자를 각각 5명씩 선정했다. 첫 번째 ‘위너’는 독일대표팀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조기 사퇴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전차군단을 4강까지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어 독일축구계가 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주길 바라고 있지만, 클린스만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선수 가운데선 이탈리아의 철벽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이 ‘뜬 별’로 인정 받았다. 부폰은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지단의 헤딩슛을 막아내는 등 7경기에서 단 2골만 내주는 신들린 선방을 했다.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도 그의 몫이 됐다. 그 외 이탈리아의 수비수 파비오 그로소, 마르첼로 리피 감독, 포르투갈의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도 ‘위너’로 꼽혔다.
반면 가장 무너진 인물로는 브라질의 호나우지뉴가 선정됐다. 지난해 FI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였던 그는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카카와 함께 ‘마법의 4중주’로 불리며 브라질 공격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무득점에 그쳤다.
자신의 은퇴경기에서 퇴장 당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파라과이전에서의 프리킥 골 외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큰 경기 징크스를 떨쳐내지 못하고 16강전에서 탈락한 스페인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 역시 16강전을 끝으로 월드컵 무대를 떠난 네덜란드의 뤼트 판 니스텔로이 등도 ‘패자’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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