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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국 부자들의 기부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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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국 부자들의 기부 릴레이

입력
2006.07.1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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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재산의 85%를 자발적으로 내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무려 370억 달러(한화 35조원)에 달한다니, 기부문화가 일상화한 미국에서도 메가톤급 뉴스인 게 당연하지 싶다.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이 거액의 기부를 선언한 이후 미국 부자들의 '기부 릴레이'가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260억 달러(한화 25조원)를 기부한 직후에 나온 발표여서 더욱 파괴력이 큰 것 같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워런 버핏을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면서 한화 574억원에 달하는 피카소의 작품을 팔아 자선사업에 쓰기로 했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임기를 마친 후 자선사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죽기 전에 자선활동에 자신의 돈을 사용하려는 문화가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인과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문화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연간 소득 100만 달러 이상인 부자들은 해마다 총 수입의 3~4%를 자선기금으로 내놓고 있고, 연봉 3만 달러 수준의 평범한 직장인도 1,000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도 생존전략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시티뱅크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팀버랜드(Timberland)는 직원들이 지역 자선단체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일정 경비와 함께 일주일간의 휴가를 주고 있다.

검색사이트 구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3만개 이상의 사이트를 찾을 수 있고, 현재 2,000개 이상의 선진기업이 매년 CSR 활동보고서를 쓰고 있다.

그런데 미국 부자들의 기부 릴레이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은 듯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각각 8,000억원과 1조원이라는 거액을 내놓았지만, 편법 상속과 최고 경영자의 비리 등 사회적 물의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이뤄진 여론조사를 봐도 부자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답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부(富)의 자발적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존경 받는 부자들이 너무 적은 탓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속 보이는' 기부활동을 미국인들의 자발적 기부문화와 비교하며 굳이 의심의 눈길을 보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현재와 같은 미국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문화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CSR 활동도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거액 기부의 효시인 석유왕 록펠러는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로 사회적 비난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부의 사회환원을 택했고, 거대 다국적 기업들 역시 1960~70년대 탐욕스러운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압력을 방어하기 위해 CSR 활동에 나서게 됐다.

물론 지금은 도덕성을 갖춘 부자와 기업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경쟁력과 수익성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시대가 됐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 기업과 사회가 상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부자라고 해서 공공의식이 유달리 높은 것은 아니다.

비윤리적이며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기업인에 대한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견제, 윤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직원들의 압력 등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재학 기획취재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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