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해체의 격랑에 휩싸인 한국의 가족을 되돌아 보게 할 연극들이 선보인다.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아버지는 위기의 남자다. 혼란의 해방 정국, 아버지는 돈 벌러 길을 떠나기 앞서 딸에게 삶의 교훈이랍시고 들려 준다. “인생은 평생 무서운 기다, 이 깝깝한 년아. 아부지 올 때까지 집 잘 지키고 알아서 살고 있그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나가서 “금발 머리 로스께 가시나 옆에 끼고, 뽀드까 마시며” 놀기 바빴다고 할머니는 들려준다.
1999년 ‘청춘예찬’으로 몰락하는 아버지상을 그려 백상예술대상 등 연극상들을 휩쓴 작ㆍ연출자 박근형 씨는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아버지 부재의 상황을 경상도 사투리로 돌아 본다. 황영희 김상규 고수희 등 출연. 23일까지 게릴라소극장. (02)763-1268
국립극단의 ‘우리 읍내’(Our Town)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경기 가평에서 펼쳐진 일상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1938년 손튼 와일더가 같은 제목의 연극으로 미국서 초연한 이래, 전 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다는 고전을 오태석 예술감독이 번안했다. 가장 한국적인 입말(구어)로 된 무대에 대한 신념으로 연극 작업을 해 온 노장의 분투 덕에 기독교 문화적인 미국 중서부의 소읍은 에누리 없이 우리 시골이 돼 다가 온다.
그러나 무대의 꾸밈새는 급진적이다. 소품을 모두 배제하는 등 아예 텅 비어 있다. 사실주의극의 전범(典範)처럼 알려진 작품이지만, 일체의 관습적 어법을 배제한 때문이다. 무대에서 배우만이 살아나게 해, 그들의 동작과 언어 하나 하나를 객석이 새롭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연극적 전략이다.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국립극단으로서는 첫 상연작인 만큼 마임을 적극 구사하는 등 파격적인 해석을 가해 공연 의미를 살렸다.
장민호(79)와 권성덕(65) 등 두 노장 배우들이 무대감독, 해설자, 관객 등으로 재빨리 운신해 가며 건재를 과시한다.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이자 오태석 씨의 제자인 김한길 연출. 문영수 권복순 등 출연. 21~8월 6일 달오름극장. (02)2280-4115~6.
한편 ‘우리 읍내’는 같은 시기에 뮤지컬로도 선보일 예정이어서 독특한 풍경을 일궈낼 전망이다. 극단 나무와 물의 뮤지컬 ‘우리 동네’. 가스펠적 음악을 중심으로 해 마임, 탭 댄스 등 볼거리로 두 시간을 꽉 채운 작품이다. 1980년대 경기 파주로 시공을 옮겨 이 시대 한국이 잃어 버린 추억의 풍경을 데려 온다. 지난 4~6월 초연됐던 이 작품은 이번 재상연 무대에서 OST도 선보인다. 8월 27일까지 나무와 물. 김성수 번안ㆍ연출, 김태리 김도신 등 출연. (02)745-2124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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