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55) 국가청소년위원장이 가출을 했다. 막내아들뻘 되는 17살짜리와 동반가출이다.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느낄 때 막연히 가출을 꿈꿔본 기억은 있지만 ‘감행’하기는 처음이다.
최 위원장은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가 마련한 ‘2006 탈출공감-둥지를 잃은 아이들과의 동행’에 참여, 7일 낮부터 8일 오전까지 1박 2일 동안 거리에서 지냈다. 탈출공감은 집 나온 청소년들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 성인과 가출 청소년이 짝을 이뤄 하룻동안 무일푼으로 가출을 체험하는 행사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인 행사에는 13팀이 참여했다.
“난 너만 믿는다.”
최 위원장이 짝이 된 이현우(17ㆍ가명)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현우는 노란 머리카락과 짝퉁 아디다스 츄리닝, 질질 끄는 슬리퍼까지 ‘가출 3종 세트’를 두루 갖췄다. 7일 점심을 먹고 두 사람은 쉼터에 지갑과 핸드폰 등 소지품을 맡긴 채 1,400원짜리 지하철표 한 장씩만 쥐고 길을 나섰다.
“표 주세요. 시청까지 1,000원짜리면 되잖아요.”신림역에 도착하자 현우는 대뜸 표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두 팀의 아이들과 함께 매표소에서 표를 바꿨다. 3팀의 표 여섯장을 1,000원짜리로 바꾸자 2,400원이 생겼다. 아이들은 담배를 사서 골고루 나눴다. 그리곤 함께 시청행 지하철에 올랐다.
“가출하면 처음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이렇게 몰려 다니면서 시간을 죽이는 거죠.”현우는 가출에 대한 불안과 기대감과는 거리가 먼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계광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분수 곁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이어갔다. 얘깃거리가 바닥나자 지나가는 사람을 훑어보며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삥뜯기 딱 좋게 생겼는데” “아냐, 저런 애는 돈도 없어” “여자랑 데이트하는 놈을 골라야 해. 돈 쓰려고 나왔거든”
듣다 못한 최 위원장이 “이 녀석들이…그게 나쁜 짓인 거 몰라?”하며 말을 끊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틀만 굶어 봐요. 무슨 짓을 못하나.”
아이들은 ‘삥뜯기’에 대한 죄의식이 무뎌진 듯했다. 아니 삥뜯기에 이어 아리랑치기, 퍽치기, 집단 패싸움과 떼지은 오토바이 폭주 등 자신들이 겪은 혹은 주변에서 들은 ‘범죄’에 대한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잠시 후 최 위원장이 화제를 바꿔 집에 관해 묻자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여덟살 때 옆집에 가서 사흘만 지내라고 하더니 엄마가 없어졌어요”, “날 찾을 생각은 않고 돈 만 집으로 부쳐줬는데 이젠 소식도 끊겼어요.”
찬찬히 얘기를 듣던 최 위원장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날이 저물자 세 팀은 각자 잘 곳을 찾아 흩어졌다. 최 위원장과 현우는 청계천을 따라 무작정 걷다 동대문에 이르렀다.
“두 시간만 기다리세요. 찜질방 갈 돈이랑 라면 사 먹을 돈 벌어 올게요.”
현우는 이내 동대문시장 쪽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의 찜질방비는 1만2,000원. 최 위원장은 현우 혼자 앵벌이하는 게 미안했는지 망설임 끝에 행인에게 다가섰다.
“저…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1,000원만….”
사람들은 흘끗 쳐다볼 뿐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한참을 허탕친 뒤에야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1,000원짜리 지폐를 건넸다. 두 시간 뒤, 현우가 돌아왔지만 둘이 번 돈은 찜질방비에 턱없이 모자랐다. 둘은 잘 곳을 찾아 헤매다 결국 근처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집에선 왜 나왔니?” 응급실 의자에서 뒤척이던 최 위원장이 조용히 물었다.
“간섭받고 맞는 게 싫어서요.”
현우의 대답은 간단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사사건건 현우 일에 참견을 하고 툭하면 손찌검을 했다. 학교도 다를 게 없었다. 야구선수였던 현우는 코치와 선배들에게 ‘빠따’를 맞은 기억밖에 없다. 중1때 처음 가출을 한 현우는 지금 세 번째 집을 나온 상태다. 집 나온 지 2년이 다 돼 간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장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어떤 장사를, 무슨 돈으로 시작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둘은 응급실 옆 대기실 바닥에 비닐 쓰레기 봉투를 한 장씩 깔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오전 6시. 새벽 한기에 잠을 깬 두 사람은 다시 청계천을 따라 집결 장소인 덕수궁으로 향했다. 집결시간 전이지만 대부분 모여 있었다. 공원에서 지낸 팀도, 시청광장 앞 잔디에서 토끼잠을 잔 팀도 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 쉼터 관계자들이 빵과 음료수를 들고 나타났다. 최 위원장의 짧은 가출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1박 2일에 끝나는, 그것도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 하는 가출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에 가슴이 저려왔다.
행사 뒤 워크숍에서 최 위원장은 “청소년 가출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껴보기 위해 참여했다”며 “가출 청소년들보다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가정과 사회 환경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쉼터 증설 등 물질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가출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중·고교생 57% "가출충동 경험"… 가정폭력 무관심 큰 이유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이들이 가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1년에 신고되는 가출 청소년 수는 1만3,000~1만6,000명이다. 이중 10% 정도가 1개월 이상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실제 가출 청소년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전국의 중ㆍ고교생 1만3,9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6.7%가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9.9%는 실제 가출을 감행했다.
가출 이유도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입시 중압에서 벗어나거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집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혼율이 급증하고 가족해체가 확산된 1990년대부터는 가정폭력이나 무관심으로 인한 가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다수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가출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귀가조치'는 더 이상 해법이 되지 못한다. 신림청소년쉼터가 가출 청소년 4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과의 연대감이 부족해 집과 거리를 오가는 전환형 가출과 가출을 해도 가족이 신경 쓰지 않는 방임형 가출의 비율이 각각 31.7%와 41.7%를 차지했다. 귀가조치로 문제가 해결되는 단순 갈등형 가출은 26.6%에 불과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