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들은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모범으로 삼아 논술 공부를 한다고 한다. 사설과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참 부끄럽고 걱정스럽다. 정치적 의도나 성향에 따라 사실을 멋대로 비틀고, 극악한 언사로 증오를 부추기는 사설ㆍ칼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이 쓴 글일수록, 이름깨나 있다는 인사가 쓴 글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송호근(50)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7월 4일자 중앙일보에‘사람 반쯤 죽여 놓고’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에 관심이 간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차 수사에서 정치는 법치 뒤에 숨어 불구경 하듯 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쓸데없는 곳에 쓸데없는 간섭을 수없이 자처해 온 정치가 왜 이 사건에는 개입 불가 원칙을 지켰을까? 그런데 어느 집권 실세가 ‘경제에는 성공, 민생에는 실패’했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국민을 헷갈리게 한 그 시점에서 정(몽구) 회장의 보석 신청을 허가한 변은‘경제’였다.
사람 반쯤 죽여 놓고 말이다.”국가와 경제 발전에 공이 많고 호화 변호인단을 살 능력이 있는 분들에 대해서만 유독 애착을 보이는 것이야 개인 취향이겠지만 정치가 진즉에 나서서 불구속으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타박을 하고 있으니 황당하다.
■정치가 법치 뒤로 숨는 당연한 일이 왜 그리 안타까울까? 모를 일이다. 수사는 검찰이 하는 일이고, 구속영장 발부나 보석 허가는 법원이 하는 일이다. 정치가 간섭할 일도 아니고 정권이 개입해서는 더더욱 큰일 날 일이다. 헌법에도 그렇게 돼 있고, 고등학교 정치경제 시간에 배우는 민주주의 삼권분립에도 그렇게 돼 있다.
송 교수는 작년 12월 MBC‘PD 수첩’이 황우석 논문 조작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세계 석학들이 인정한 연구가‘가짜’라고 생각하는 것도 놀랍거니와, 방송 전문가가 과학세계를 헤집고 다닌 과욕과 무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PD 수첩의 행위는 탱크를 앞세워 대학을 점령했던 군부정권보다 더‘군부적’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특정인의 칼럼 얘기를 이리 길게 하는 것은 요즘 이처럼 사리를 어지럽히는 글이 너무 많아서이다. 옛날 같았으면‘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고 지탄이라도 받았으련만 지금은 하도 세상이 좌와 우, 보수와 진보로 갈려 그런 중립적 권위도 없다. 그런즉 선생님들께서 잘 가려서 논술 지도 해 주셨으면 한다. 아차, 이러다 “너, 노빠 아냐?”소리 들을라!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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