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K에 투자할 ‘숨은 보석’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희망이 보입니다.”
VK가 최종 부도를 낸 7일 밤 11시.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서 “속시원히 얘기하고 싶다”는 이철상(39ㆍ사진) 사장과 단독으로 만났다.
이 사장은 8일 새벽 4시까지 5시간 가량 부도를 막지 못한 회한과 아쉬움, 그리고 회사를 살리기위한 백의종군 의지 표명 등 격정을 토로했다.
몰려오는 어음을 결제하느라 며칠 밤을 새고 밥도 제대로 못먹어 지친 모습인 이 사장은 그곳에서 방금 전까지 외국 투자가와 바이어들을 만나는 등 VK회생을 위한 투자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부도는 났어도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외국인 투자자들을 끝까지 설득했다는 게 이 사장의 전언.
이 사장은 “이달 중순 이후 미국 C사와 B사에서 500억원 이상 들어오기로 돼 있었고 10일 이후 보다폰을 통한 포르투갈 진출, 인도네시아 및 베네수엘라 수출을 위한 신용장(LC) 개설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부도가 몹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B사는 전략적 투자자였고 C사는 휴대폰을 선적하면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이날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법정관리)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재산보전처분 명령이 받아들여져 채무가 동결됐다.
또 증권선물거래소에는 상장폐지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는 “협력업체를 비롯해 금융기관, 대기업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며 “그래서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투자가들을 찾느라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희망이 실현되려면 최소한의 부품 구매자금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700억원에 이르는 부품 자재를 갖고 있으나 몇 종의 부품이 모자라 휴대폰을 못 만들고 있다”며 “협력업체들과 논의해 필요 부품을 외상으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이번 위기의 핵심은 과도한 자재 구매 때문”이라며 “한국 휴대폰 업체들이 재고 부담과 가격경쟁력 약화에 따른 채산성 악화를 타개하기위해선 단말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휴대폰 업체들은 기술 개발과 설계만 하고 생산을 외부에 위탁해야 한다”며 “모토로라, 노키아는 모두 중국에 위탁 생산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국내 휴대폰 업계도 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보통신부에서 물류 시스템, 부품 표준화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4~6월에만 부품값으로 504억원의 어음을 현찰로 막았다”며 “이러니 무슨 돈이 있어 회사를 운영하겠냐”고 반문했다. 세간에서는 SK텔레콤이 지원한 100억원, 유상증자분 118억원의 사용처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이 사장은 이에대해 “이들 자금은 모두 부품값으로 들어갔다”며 “심지어 내가 사는 집의 전세보증금 2억원도 투입됐다”고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이 사장은 몇 달째 월급을 못가져 갔고 직원들도 2개월 동안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직원들은 이날 그에게 “사장님 힘내세요. 제가 있잖아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 이 사장은 “그래. 네가 있으니 열심히 할께. 지금부터 바짝 뛰자”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이 사장은 동요하지 않는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실제로 7일 오후 6시쯤 기자가 방문한 안양 VK본사는 부도난 업체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일체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지킨채 업무에 열중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이 사장은 VK를 떠날 생각이 없다. 그는 “고생하며 일군 회사여서 아프고 쓰리지만 필요하다면 지분과 경영권을 내놓겠다”며 “그 뒤에는 휴대폰 세일즈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에 라디오, MP3플레이어, 카메라 등이 결합된 ‘VK119’, 30만원대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 ‘800C’ 등이 출시될 예정”이라며 “이 제품들을 들고 다니며 팔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이 사장은 부도를 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최종 부도 전날에는 중견 휴대폰업체 A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찾아갔다. 그는 “회사를 맡기겠다”며 “A사는 내수에 주력하고 VK는 수출 물량을 만들면 경쟁력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A사 CEO는 큰 관심을 보였으나 금융권 문제로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 사장은 기자와 대화 도중 새벽 2시에 국내 최대 휴대폰업체인 B사의 사장에게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제조자 설계생산(ODM) 방식으로 일할 테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이 사장은 “386운동권과 결부된 정치적 이미지 때문에 답변이 쉽게 올지 모르겠다”며 “386운동권 이미지가 내게는 굴레였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사장은 예전 전대협 의장 권한 대행 시절이 생각났는지 잠시 옛潔薩綬?했다. 그는 “당시 형이 군 장교였다”며 “지명 수배중인 나 때문에 형도 꽤 시달렸는데, 어느날 형과 우연히 통화를 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형의 말에 힘을 얻어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힘든 수배생활을 견뎠다”고 고백했다.
지금 그는 학생운동 시절처럼 “VK는 반드시 살아난다”는 신념으로 고난과 마주 섰다. 그는 “정작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정부, 금융권에서 휴대폰 업종은 더 이상 안된다는 낙인을 찍어놓고 바라보는 시선이었다”며 “한국 휴대폰 업종이 위기지만 효율적인 변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이상 위기를 말하지 말라”며 “VK 회생을 통해 한국 휴대폰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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