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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추리소설 대표주자 레이먼드 챈들러 "썩은 도시 LA, 검은 속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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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추리소설 대표주자 레이먼드 챈들러 "썩은 도시 LA, 검은 속 보여주지"

입력
2006.07.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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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문학계의 거물 스티븐 킹은 ‘창작론’이라는 부제를 단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유는 1940년대와 1950년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나 한심한 싸구려 소설에서 찾아낸 것들이다”고 썼다. 그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과 ‘한심한 싸구려 소설’을 구분했지만, 40~50년대 당시의 미국 문단에서 그 둘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 ‘한심한 싸구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하지만, 당대의 근엄한 주류들을 비웃듯 40년대 할리우드의 ‘필름 느와르’라는 흐름을 선도했고, 사후 하드보일드 리얼리즘의 고전으로 영미권 문학의 진지한 논문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들이 바로, 대시엘 해멧, 로스 맥도널드,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나긴 이별’은 12번을 읽었다.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고 말했고, 폴 오스터가 “그는 미국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냈고, 이후 미국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던 바로 ‘그’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시와 수필을 썼고,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석유회사 부사장으로 출세하지만, 음주와 장기 결근으로 쫓겨난 이력의 작가다. 펄프 매거진에 범죄단편을 기고하며 문학 인생을 시작한 그는 첫 장편 ‘빅 슬립’(39년)부터 후기 걸작 ‘기나긴 이별’(54년)까지 6권의 장편 추리소설(박현주 옮김, 북하우스)을 썼다.

오스터의 말처럼, 그의 문학은 현대 미국을 읽는 효율적인 코드 가운데 하나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에서도 가장 비등점이 높은 도시 LA를, 군수산업을 필두로 한 산업문명의 어지러운 성장과 사회ㆍ사상ㆍ가치의 부패와 혼란으로 뒤숭숭했던 30년대 말~ 50년대를 그의 소설은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하게 관류한다. 그의 ‘페르소나’라 해도 좋을, 사립 탐정 ‘필립 말로’ 와 함께.

183㎝의 키에 85㎏의 당당한 체구, 경찰직에서 해고당한 33살 독신의 낭만적 냉소주의자 ‘말로’. 그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정의의 투사도, 영웅도 아니다. 자신의 일에 때로는 목숨도 걸지만 사명감 따위는 없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과 삶 자체를 냉소하는 ‘삐딱한 프로’다. 경찰 일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그를 욱대기고 그는 경찰을 이죽거리는 장면이다. “베이시티에서는 그 이유만으로 당신을 죽여버릴 수 있었어.”(경찰) “베이시티에서는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날 죽일 수 있었겠지.”(말로) “그 이유만으로 당신을 영업정지시킬 수 있었어.”(경찰) “고려해보시지. 난 이 직업을 좋아한 적이 없었거든.”(말로) -‘리틀 시스터’에서

챈들러 문장의 매력은, 인물의 내면까지 공간에 투영시키며 치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끌고 가는 묘사의 힘, 그리고 ‘~듯이’ ‘~처럼’으로 이어지는 그 특유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이런 문장. “장군은 다시 천천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쇼걸이 마지막 남은 고급스타킹을 사용하듯 조심스럽게 힘을 사용해서 말했다.” -‘빅슬립’에서

챈들러는, 그리고 ‘말로’는 당대의 타락과 위선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대신, 냉소와 조롱, 연민과 익살로 포용한다. 고독한 감성과 치밀한 추리의 세계로 품는다. ‘빅슬립’의 33살 청년 탐정 말로는 ‘하이 윈도’ ‘안녕 내사랑’ ‘호수의 여인’ ‘리틀 시스터’ ‘기나긴 이별’ 까지 편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아름다운 염세주의 미학을 구축해간다.

냉혹하고 현실적인 팜므 파탈형 여성들을 주로 그렸던 소설에서와 달리, 18살 연상의 아내를 생애를 두고 열렬히 사랑했다는 챈들러는 ‘기나긴 이별’ 발표 직후 아내가 숨지자 실의에 빠져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 세상을 떠난다.

그의 첫 장편 ‘빅 슬립’은 지난 해 말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영어소설에 들었고, 그의 팬 대다수가 최고로 꼽는 ‘기나긴 이별’은 ‘히치콕 매거진’선정 세계 10대 추리소설에 꼽혔다. 올 여름, 그와의 연애에 빠져보자.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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