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에서 신라와 백제는 치열한 ‘말’의 전투를 치른다. 영ㆍ호남 사투리의 대결이다. 선봉에 나선 것은 단연 ‘욕’이다. 양 진영에서 발사되는 ‘욕 폭탄’은 전투의 상황을 요동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물론 웃자고 꾸민 영화적 설정이지만 엉뚱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당시 두 국가는 욕을 주고받을 정도로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을까?’ 두 나라 국민은 험준한 지형에 가로 막혀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수백 년을 지냈을 텐데, 지금도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현재로선 알 길이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면 ‘비슷했을 것’이다. 백제 무왕 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탐내 서라벌에 ‘서동요’를 퍼뜨렸고, 고구려인 백석이 신라의 화랑들 틈에 끼어 김유신을 노렸다는 등의 기록으로 볼 때, 삼국시대 세 나라의 언어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고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2장 변하고 사라지는 말)
책은 대략 이런 형식으로 쓰여진 ‘우리말 이야기’다. 우리말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역사에 따른 변화, 변화로 비춰본 당시의 사회상 등 우리말과 역사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史實)과 상호작용과 사유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연결한다.
책은 크게 5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말’, ‘변하고 사라지는 말’, ‘말을 배우고 가르치고’, ‘문화를 비추는 말’, ‘역사의 산 증인, 말’ 등이다. 순서대로 볼 필요 없이 먼저 관심이 가는 부분을 선택해 보면 된다. 책은 딱딱하지 않다. 영화 ‘황산벌’ 처럼 가볍게 출발해 논지를 파고 든다. 각 주제를 또 4개의 아이템으로 분리했고, 각 아이템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독서 호흡에도 부담이 없다.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공저자들은 2002년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3년에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을 펴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었다. ‘역사가 새겨진…’은 저자들이 ‘우리말의 역사를 둘러본 추억으로 우리말을 보듬고 미래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낸 책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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