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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기부양 대 경기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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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기부양 대 경기활성화

입력
2006.07.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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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지만 실제는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언어의 위력이자 마법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세금경감(Tax Relief)'이라는 용어를 새로 도입했다. 고통을 덜어준다는 의미(Relief)가 들어감으로써 감세가 국민을 구원하는 훌륭한 정책인양 분장한 것이다.

조세의 분배기능을 악화시킨다며 감세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대선 패배 원인이라고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꼬집었다. 논쟁에서 이기려면 언어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 요즘 언론에서 즐겨 쓰는 '세금폭탄'이란 단어는 세금의 타당성, 액수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 전에 온 국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세금징수라는 선입관을 머리 속 깊숙이 새겨넣는다. 공무원들이 이 용어를 질색하는 이유다.

'차떼기당'이란 한마디에 한나라당이 이미지에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받았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정부 문서에서 '빈곤층'이 사라지고 '저소득층'이 등장했다. 또 '빈부 격차' 대신 계층간 의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양극화'란 용어가 자리잡았다. 공공요금은 '인상' 이 아니라 '현실화'다.

▦ 6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운용방안의 기조를 언론은 '경기 부양'이라고 규정했지만, 정부는 '경기 활성화'란 표현을 고집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합리적 경기진작'이라는, 좀더 부양에 가까운 어휘를 사용했다. 이렇게 굳이 경기 부양이라는 용어를 피하려는 것은 과거의 악몽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 경기 부양을 위해 단행된 '신경제 100일 계획'은 반짝 효과를 내다가 종국에는 건국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불렀다. 또 이 위기를 내수 부양을 통해 서둘러 극복하려는 김대중 정권의 조급증 역시 결국 카드사태와 신용대란을 낳았다.

▦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열린우리당의 강력한 경기부양 주문 때문이다. 하반기 경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미 잡혀 있는 예산을 적극적으로 집행하고, 위축된 건설경기에 신규 투자의 온기를 불어넣겠다는 대책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일시적 진통제가 아니다. 아픔을 참더라도 근본적으로 병을 고치고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정공법적 처방이다. 그 처방전은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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