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이 딱딱한 것을 이기려는 의지 속에서 목화 꽃이 벙근다. 일종의 삶과 생명이 지닌 역설의 원리다.
목화는 극단 이름이기도 하다. 그 이름에 걸맞는 연극 한 편을 요즘 극단 목화는 야외무대에서 올리고 있다. 콘크리트 스탠드를 마른 갈대로 가린 뒤, 죽음의 땅이 생명의 숨구멍이 되는 역설을 펼치는 ‘내 사랑 DMZ’가 그것이다(오태석 작 연출).
인간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동물과 식물들에게는 평화로운 삶의 터전인 비무장 지대. 경의선 철도 개통 결정 이후, 그 곳은 매설되어 있는 지뢰를 터뜨리느라 아수라장이 된다. 인간의 평화가 다가오면 생명의 평화가 끝나는 역설이 극의 전제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역설의 땅, 인간의 삶이 확장되는 그곳에서 다른 생물의 생명은 끝장 나니 바로 새만금이다.
“사람 불러 사람 싸움 붙여.”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용한 무당 모셔 오고, 굿 한 자락해서 비무장지대에 묻힌 망자들을 불러낸다. 53년 전 죽은 병사들을 부생(復生)케 하여 죽음이 생명을 살리는 역설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뫼셔 와, 말어?” 다툼이 일지만 결국 가마에 불은 지펴지고, 백골이 음식 담는 본차이나라도 되듯 죽은 병사들의 뼈다귀는 여러 목숨 살리려고 부활한다.
병사들은 좌충우돌 지뢰 제거 작업을 방해하고, 이들의 꾀가 먹혀 경의선 철도가 드디어 지하로 다니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제 그들은 지하세계로 귀대하고, 남은 뭇 것들은 감응하여 이 무명용사들의 위패를 만들어 주자는 것으로 보은한다. 여기서 찡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이야기 전개상 개연성 면에서 거두절미해도 될 것을, 못 미더워 되다짐 하느라 이야기 고가 매끄럽게 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 많고 수심 많은 이 이야기꾼은 이번에도 굿 정신으로 생동한다. 평소 벌이던 인간사 해원하는 굿에서 판을 넓혀 온 생명을 위한 살림 굿으로 펼쳐 놓았다. 두 발 인간, 네 발 짐승 함께 살기 위한 대동굿이 곧 ‘내사랑 DMZ’인 셈이다.
여우, 오소리, 들쥐, 황새, 닭, 곰, 저어새, 게, 꼬막, 천산갑, 황금두꺼비…. 이 땅을 육곳간이자 어물전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인간의 탐욕에 맞서서, 아예 무장할 수조차 없는 약한 생명들이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자고 옛 노래 가락과 입말을 동원해 읍소하고 있다. 국립극장 하늘극장, 8일까지.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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