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지금은 위기다. 무모하리만치 도그마로 가득 찬 북한의 미사일 발사 결정은 동북아 질서나 한국 외교전선에 중대한 위기를 불러왔다. 국제정치에서 재연되는 위기가 더욱 심각한 폭발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동일한 현안을 둘러싸고 위기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최초의 위기를 봉합한 방도가 구조적으로 불완전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며, 불완전한 해결책 속에서 불신만 커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연되는 위기가 더욱 위험하다.
지난 1990년대 초 이래 북한 문제는 동북아 지역질서를 결정하는 시금석과 같다고 관측해 왔다. 동북아가 대립질서로 회귀하느냐 혹은 협력질서로 진행되느냐의 갈림길에 북한 문제가 존재해 왔다.
작년 6자회담 공동성명의 발표를 중대한 성과라고 평가했던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그러나 동북아 질서가 얼마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지, 또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과제를 남겨놓고 있는지는 이번 북한 미사일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의 강경한 대응자세, MD체제 구축의 공론화를 통해 지역 군비경쟁 가속화가 나타나게 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대립질서 쪽으로 무게추가 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있다. 동북아질서가 대립국면으로 가게 되면 한국 외교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대립의 전선은 또다시 한반도 위에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를 둘러싼 협착구조는 이번 사건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위기 가운데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 한국에 부과된 역할이다. 사실 사태의 핵심은 북미관계다. 체제생존과 체제변환의 논리가 파열음을 내면서 부딪치고 있고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불신구조만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양자회담과 6자회담을 기술적으로 병행시키는 것 외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은 양자냐 다자냐의 형식논리보다는 본질적 핵심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외교란 조정의 기술이다. 어떤 형식이건 미국과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기 위한 외교적 조정 과정에 한국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현 시점에서 일본처럼 경색 일변도의 자세만을 유지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으로서는 북미 양국이 접촉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외교적 유연성은 결연한 원칙 천명과 설득을 통한 조정의 범위 가운데에 있다. 어떤 상황과 시점에 그 기술들이 유용할지는 정부가 판단할 몫이다. 경우에 따라 중국과 외교적 역할 분담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 속에서 정부는 11일로 예정된 남북장관급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시기를 다소 늦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외교조차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국들과의 충분한 협의와 공조체제 유지가 더욱 필요하다. 북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와 향후 심각한 상황전개 가능성을 전달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민족공조 외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음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통남통미(通南通美)의 구도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길이다.
김기정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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