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고 있지만, 마음은 휴가계획으로 저만치 둥실 부풀어있다. 휴가는 일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그 떠남의 홀가분함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를 동반하고 거기에는 휴가 뒤의 뿌듯한 여운에 대한 기대도 얹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 떠남과 복귀 사이, 기대와 여운 사이를 채워줄, 휴가의 좋은 동반자들- 책을 한국일보 안팎의 식구들이 고심하며 골랐다. / 편집자주
▲ 고재현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씨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는 작가가 20여년 동안 제주도에 살면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풍경 사진과 함께 엮은 에세이집이다. 그의 작품들은 사진이 그저 눈으로 본 것을 객관적으로 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찍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의 유고 사진집 ‘김영갑 1957~2005’(다빈치 발행)도 있다. 휴가는 단지 일상에서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여행의 반려로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와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노승석 옮김, 동아일보사)을 권한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가 잘 드러난 김훈의 소설과 ‘난중일기’를 읽으며 평소 헤아리지 못했던 우리, 민족, 나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해안을 여행하는 분들에게는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를 둘러보는데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 김현석 영화감독
미하엘 엔데의 중ㆍ단편집 '자유의 감옥'(이병서 옮김, 보물창고)은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나른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책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사유와 유머는 피서지에서 짬짬이 읽기에 제격이다. 재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양억관 옮김, 북폴리오)도 단숨에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 ‘레볼루션 No3’도 좋다. 세상을 냉소적이면서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즐길 수 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독특한 서사구조도 흥미롭다. ‘음모론의 대가’인 이키유바라 최의 ‘그림자 정부 시리즈’(해냄 발행)는 현재 세계 정세와 경제 흐름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해준다. 세계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프리메이슨 집단의 비밀과 야욕을 미래사회 편, 정치 편. 경제 편 3권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세상사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 박철화 문학평론가ㆍ중앙대교수
로알드 달의 작품집 '맛'(정영목 옮김, 강)은 일상의 일이지만 쉽게 경험하기 힘든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유쾌하고 자연스러운 입담, 허를 찌르는 반전을 통해 나른한 일상의 영혼을 개운하게 한다. ‘맛’의 맛이 좋았다면 또 다른 작품집 ‘세계 챔피언’도 이어 읽자. 이 두 권은 작가의 대표 단편들을 나누어 수록한 쌍둥이 책이다. 소설가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민음사)은 작가의 탄탄한 문장의 맛만으로도 권할 만한 소설집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의 관습적인 삶과 그 관습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들, 요컨대 진실과 관습 사이의 긴장으로 독자를 신선하게 자극한다. 아르헨티나 작가 비르마헤르의 ‘유부남이야기’(김수진 옮김, 문학동네)는 유부남들의 일상을 다양한 이야기로 엮은 책이다. 당신이 유부남이든 아니든, 남자든 여자든 이 책으로 하여 그의 이야기만큼 다채로운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 이재현 문화비평가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서숙 옮김, 민음사)를 권한다. 레싱은 그의 경력으로 보아 노벨상을 타고도 남는다. 10대 미혼모, 장애아의 어머니, 택시 운전사, 아시아계 이민자, 공원 산보객, 버림받은 여자…. 18편의 아주 짧은 이야기 속 인물들은 오늘 런던의 사람들이지만, 읽다 보면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알게 된다.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의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정유진 옮김, 개마고원)는 남성 누드가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어떻게 재현됐고, 또 어떻게 수용돼왔나를 밝혀주는 책이다. 여성 이미지가 가부장제적이고 남근 중심주의적으로만 재현돼왔다는 통설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게 한다. 읽지 않고 그림만 봐도 재미있다. 미국 철학자 테드 코언의 ‘농담 따먹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강현석 옮김, 이소)은 유머와 우스개에 대한 학문적 연구서다. 하지만 결코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으며, 책 크기와 분량도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얇다. 그가 인용한 유머만 즐겨도 좋다.
▲ 황인숙 시인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그를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문,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 중단편집 '그리운 사람'(유진 옮김, 하늘연못)은 그의 친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때론 시적으로, 때론 세밀하게 묘사해가는 그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보자. 이 한 권으로도 당신의 여름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소설가 유재현의 소설집 ‘나는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강)의 작품들은 ‘사는 게 뭔지’ 하는, 탄식도 탄성도 아닌 어떤 소리를 저도 모르게 토하게 만든다.
소설 속 인물들의 지난한 삶이 빚어내는 진한 감동의 가장 진솔한 음성적 표현일 것이다. 중남미문학을 전공하고 동양종교 및 철학에도 정통한 김홍근씨의 사진 에세이 ‘(마음이 단순해지는) 선화’(마음산책)는 고졸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가 소개하는 마음의 작은 흔적들을 사진과 활자로 따라가는 맛도 그만이지만,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길을 나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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