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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새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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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새봄이

입력
2006.07.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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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무언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귀 기울여보니 구운 김이 담겨 있던 셀룰로이드 곽이다. 고양이 물그릇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부나 했는데 종횡무진으로 구른다. 낮에 새끼 고양이들한테 털실구슬을 던져줬는데 그걸 갖고 놀다가 흥분했나보다. 좀 과격하게 노는군.

흐뭇해하고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누군가 철사 줄로 긁으며 벽을 돌고 있다. 뒤숭숭해 하며 그 소리를 따라다니다 문단속을 다시 하고 자버렸다. 깨어나자마자 나가보니 털실구슬이 갈기갈기 찢겨 옥상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셀룰로이드 곽은 찌그러져 있다.

신문을 가지러 대문간에 내려가서야 진상을 알았다. 나를 보자마자 새봄이가 반기며 달려든다. 쇠사슬 줄이 풀려 있었던 것이다. 새봄이는 집주인이 키우는 네 달 먹은 풍산개다. 그 동안 그 놈이 줄이 풀릴 때마다 옥상에 올라와 물탱크도 들이받고 고양이 먹이도 먹어치우고 광란의 시간을 보냈던 거다.

새끼 고양이들이 얼마나 겁먹었을까? 나는 새봄이가 와락 미워서, 저리 가라고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새봄이가 무슨 죄인가? 뜰에 혼자 묶여서, 이렇게 외롭게 할 걸 나를 왜 데려왔냐는 듯 울부짖던 강아짓적 새봄이가 생각난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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